“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도종환의 <배롱나무> 중 일부-
배롱나무는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도록 꽃을 피우는 덕에 목백일홍으로 불리기도 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을 무색하게 하는 백일홍으로 부르는 두 가지 식물 중 하나로 배롱나무는 부처꽃과에 속하는 나무인데 반해 멕시코 원산의 화초인 백일홍은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꽃이 피면 여느 꽃들과 달리 백일을 가는 때문이다. 하지만 배롱나무는 한 번 펼친 꽃이 백일동안 피어 여름을 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작은 꽃들이 원추상의 꽃차례를 이루어 피고지기를 거듭하며 백일 동안 꽃나무로 사는 것이다.
배롱나무는 중국이 고향인 낙엽성 큰키나무지만 대개 3m정도이고 기껏해야 7m정도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줄기는 갈색에 담홍색을 띠며 간혹 흰색의 둥근 얼룩이 있으며 껍질이 매우 얇고 매끄러운 게 특징이다. 꽃은 대부분 진한 분홍색이지만 자주색, 연분홍색, 또는 흰색 꽃도 있다. 배롱나무꽃을 한자로는 자미화(紫微花)라 하는데 이는 자주색 꽃이 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고, 중국 자미성에 많이 심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배롱나무의 별칭 중에 ‘간지럼나무’가 있는데 이는 매끈한 줄기를 간질이듯 긁어주면 나뭇가지가 흔들려서 간지럼을 타는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되며 오래 된 절집이나 고옥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매끈하고 깨끗한 수피 덕분에 청렴결백한 선비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정자나 향교에도 많이 심어 가꾸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나무로는 천연기념물 제168호로 지정된 부산 동래정씨 시조인 정문도공(鄭文道公)의 묘지 앞에 있는 800년이나 된 배롱나무로 부챗살처럼 뻗은 가지 끝에 핀 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 외에도 안동의 병산서원, 담양의 소쇄원, 명옥현, 강진 백련사 등이 아름다운 배롱나무를 만날 수 있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최강의 불볕더위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배롱나무꽃은 피고지기를 거듭하며 한 발 한 발 가을을 향해 가고 있다. 시인의 표현처럼 배롱나무는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하게 꽃을 피운다. 그 꽃이 지면 벼가 익는다 해서 쌀밥나무로도 불렸던 배롱나무 꽃그늘로 가서 여름의 끝을 정리하고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상상해 보는 것도 괜찮은 피서법이 아닐까 싶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