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교란종으로 지목되어 사람들의 손에 무참히 뽑혀나가는 서양등골나물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오래 전 책에서 읽은 미국의 목조가옥을 쓰러뜨린 흰개미 일화가 생각났다. 세계2차대전이 끝났을 때 필리핀에 주둔해 있던 미군들은 귀국을 하기 위해 짐을 꾸렸다. 미군들의 짐은 필리핀 현지에서 제작된 나무 상자에 담겨 미국으로 옮겨졌고, 귀국한 미군들은 짐을 풀어 빈 나무상자들을 기지의 한 쪽 구석에 버린 채 집으로 갔다. 하지만 기지 한 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나무 상자 속에 흰개미들이 따라왔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 개미들이 머지않아 목조가옥을 마구 쓰러뜨리는 골치 아픈 존재가 될 줄은 까맣게 몰랐다.
서양등골나물은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길가나 숲의 개활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1978년 서울 남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짐작키로는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의 신발이나 여행가방에 묻혀 옮겨진 게 아닌가 싶다. 발견 당시엔 서울 남산과 워커힐 언덕에서 한두 포기 보일 정도였던 것이 강인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기존 생태계를 위협하며 그 세력을 수도권까지 확장한 상태다.
해마다 서울에 가을이 오면 서양등골나물은 공터와 산지 곳곳을 순백의 꽃으로 가득 채운다. 꽃은 어디에 피어도 아름답다. 사람들이 생태계 교란 식물로 손가락질 하든 말든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해마다 그 자리에 꽃을 피우고, 꺾이고 뽑혀도 보란 듯이 다시 피어난다. 숲 그늘에 무리 지어 핀 서양등골나물 꽃을 보면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환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양등골나물의 꽃말은 '주저' '망설임'이다. 이 땅에 뿌리 내리고 꽃 피우기까지 얼마나 주저하고 망설였으면 그런 꽃말을 가졌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공연히 꽃에게 미안해진다. 우리 인간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쓰레기를 배출하는 지구 최대의 생태계 교란의 주범이 아니던가.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