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꽃의 보라색 꽃잎은 벌에게 '꿀'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꽃의 안내판이다. 한낮엔 활짝 피어 많은 곤충들을 유혹하는 보라색 용담꽃은 해질녘 기온이 내려가면 그제야 꽃봉오리를 오므려 닫고 하루의 일과를 마감한다. 꽃잎을 닫기 전, 용담꽃은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길 기다린다. 홀로 단독생활을 하며 매일 밤 잠잘 곳을 찾아다니는 좀뒤영벌이다. 용담꽃은 이 특별한 손님을 위해 기꺼이 잠자리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서 용담꽃은 좀뒤영벌만의 여인숙인 셈이다. 세상의 여인숙 중에 이보다 향기로운 여인숙이 또 있을까 싶다. 닫힌 꽃 안에서 따뜻한 밤을 보낸 벌은 다음 날 아침 꽃봉오리가 다시 열릴 때에 맞춰 활동을 시작한다. 꽃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 벌의 몸엔 꽃가루가 잔뜩 묻어 있게 마련이다. 벌이 다시 이 꽃 저 꽃으로 부지런히 꿀을 찾아다니는 동안 자연스럽게 몸에 묻은 꽃가루를 옮겨 꽃의 수정을 돕는다. 하룻밤 재워준 것에 대한 보답인 셈이다.
용담이란 이름은 그 뿌리의 쓴맛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얼마나 쓰길래 쓴맛의 대명사인 웅담(熊膽)보다 더한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의 쓸개(龍膽)를 가리키는 용담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용담은 우리나라 전역에 걸려 자라는 용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키가 20∼60㎝ 정도로 4개의 가는 줄이 있으며 근경이 짧고 굵은 수염뿌리가 있다. 잎은 잎자루가 없고 끝이 뾰족하고 밑이 둥글다. 잎은 3개의 맥이 있으며 꽃은 통꽃으로 자주색으로 늦가을에 피는데 길이는 4.5∼6㎝다. 꽃부리는 종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5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5개로서 꽃부리통에 붙어 있고 1개의 암술이 있다. 삭과는 시든 꽃부리와 꽃받침이 달려 있으며 대가 있고 종자는 넓은 피침형으로써 양끝에 날개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용담속 식물 13여 종류가 자생하며 흰 꽃이 피는 것을 흰용담이라 하며, 특히 대암산 용늪에만 서식하는 비로용담은 희귀종에 속한다. 용담은 그리 크지 않은 키와 꽃을 가지고서도 결코 기죽지 않은 채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아랫부분은 봉곳하게 부풀고 윗부분은 나리꽃처럼 벌어진 보랏빛 꽃을 보면 신비로운 생각마저 든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빼앗기기 쉬운 이토록 아름다운 꽃에 용담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뿌리의 쓴맛 때문이라니. 꽃에 현혹되지 않고 뿌리의 약성에 주목하여 이름을 붙인 사람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용담이란 이름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그만큼 쓰고 약효가 좋은 약초로 알려져 있다. 뿌리에 많이 들어 있는 알칼로이드 성분은 항암, 항염증, 통증 등에 효과가 있어 신이 내린 약초로 불린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약재로 쓰는데 간기능 보호, 담즙 분비 촉진, 이뇨작용, 혈압강화, 진정 작용, 항염증 작용이 있어 소화불량, 간경변, 담낭염, 황달, 두통 등 많은 증상에 쓰인다. 요즘에는 약재로써 뿐만 아니라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 원예식물로도 사랑받는다. 마디마다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모습이 소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신비스런 보랏빛 꽃빛이 일품이어서 곁에 두고 보기에 더없이 좋은 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늦은 여름부터 피기 시작하여 꽃들이 자취를 감춰가는 초겨울까지 꽃 피는 기간이 길어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추운 밤 벌들의 따듯한 잠자리가 되어주며 꽃에서 뿌리까지 우리에게 이로움만을 베푸는 용담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림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