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일몰 예정인 신용공제 소득공제 정책을 두고 정부의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일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근로자의 보편적 공제 제도로 운용돼 온 만큼 올해로 제도의 효력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연장돼야 한다는 것이 대전제"라며 "이를 기본으로 신용카드 공제 개편 여부와 개편 방향을 검토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홍남기 부총리의 발언으로 여론이 악화되고 근로자들의 반발이 예상되자 기재부가 한 발 물러서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 대신 '축소'로 가닥을 잡았다.
홍 부총리는 지난 4일 납세자의 날 기념 행사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와 같이 도입 취지가 어느 정도 이뤄진 제도에 대해서는 축소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신용카드 소득 공제는 올해 말까지 연장 결정이 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폐지되는데, 그동안 계속 연장해왔던 것을 올해는 연장할지, 말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는 과거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기재부와 국무조정실 등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문제에 대해 발언을 번복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입장을 바꾸면서 수습에 나서는 모양새다.
수습에도 여파는 크다. 홍 부총리의 발언 직후 신용카드 소득공제 논란이 일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이 사라지면 안된다는 청와대 국민 청원 의견이 등장하는가 하면 각종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봐도 응답자의 65.9%가 신용카드 소득 공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납세자연맹은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15%가 사라지면 연봉 5000만원 전후의 근로자들은 앞으로 세금이 최대 50만원가량 증가한다는 분석도 내놨다.
납세자연맹의 분석이 과장돼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근로자들은 '증세 자체'에 대해 반발할 수 밖에 없다. 물가는 오르는데 올해도 기업 10곳 중 4곳이 연봉을 동결하는 마당에 1999년부터 20년간 지속된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없앤다고 하니 말이다.
더욱이 이번 신용카드 소득공제 논란이 정부가 '제로페이'를 밀어주기 위한 심산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면서 불만은 더 거세졌다. 제로페이는 도입 초기인 것을 감안해도 사용건수가 많지 않아 '인기가 제로'라서 제로페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상태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든 '축소'든 불만이 끓어오를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줄여도 소득공제 혜택이 더 많은 체크카드나 현금 사용을 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체크카드와 현금영수증의 소득공제율은 신용카드의 2배인 30%이어서 혜택도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소비 행태는 그렇지 않다. 지난 4분기 말 기준 전체 신용카드 승인액은 163조7000억원으로 체크카드(45조9000억원)의 3배가 넘는다. 소득공제율이 훨씬 높은데도 체크카드보다는 신용카드를 선호한다는 뜻이다. 결제하는대로 돈이 빠져나가는 체크카드보다 신용카드가 소비 생활에 유리하고, 연회비가 비싸더라도 기본적으로 혜택이 더 많다는 판단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실생활에서 목돈이 필요한 제품을 신용카드로 사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점만 봐도 말할 것도 없다.
국민 대부분은 어느 법인에 속한 근로자일 것이다. 소득이 투명하게 보인다고 해서 '유리지갑'라고 불린지 오래된 근로자의 지갑을 손대는데 반발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적 평가 비중이 커지고 있는 요즘, 정부는 정책적 결정이 일반 대다수 근로자들의 일상 생활에 영향을 끼칠 때 국민들의 불만이 임계치를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경제부총리는 한 나라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수장으로서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와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의 삶과 직결돼 커다란 파장을 불러온다는 점을 다시한번 아로새겨 맡겨진 중직을 수행해야 할것이다.
이효정 기자 lhj@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