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단위 변경 언급과 관련해 이 총재는 이원욱 의원의 질문에 개인적인 생각을 말했을 뿐이며 정치권에 공을 넘겼다는 모호하고 소극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 총재는 이 논의(화폐단위 변경)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하는 인식이 돼 있을 때 가능할 것이라면서 화폐단위 변경 논의를 먼저 주도할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니고 질의응답 과정에서 질문에 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5일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이 총재의 모습은 달랐다. 이 총재는 '국회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공론화 해보는 게 어떠냐'는 이 의원에 제안에 동의하며 논의 주체가 '정치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입장이 좀 다르다. 익명의 한국은행 관계자는 우리나라 화폐 단위가 선진국과 비교해 너무 커 화폐개혁 필요성이 필요하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화폐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크게 내고 싶지만 꾹 참는 것처럼 보였다.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총재는 "우리는 준비는 되어있지만…"이라고 꼬리를 내렸다. 경제 수장으로서 신중하고 넓게 보며 말하는 자세가 아쉽다.
화폐개혁이 어디 쉽게 말로 얼버무리고 넘길 일인가. 한 나라의 경제가 뒤집어 질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거래 편의와 회계 기장 처리 간소화 ,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차단, 대외 위상 제고, 부패와 위조지폐 방지 등의 장점도 있지만 화폐 단위 변경에 따른 불안감 조성, 부동산 투기 심화, 화폐 주조비용 증가 등의 단점도 만만치 않다.
이 총재는 한 국가의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으로서의 그의 말은 필부의 말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말과 포지션이 필요하다. 이 총재는 이번 사례가 아니더라도 정책결정이나 정치적 발언에 너무 무책임하고 우유부단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경제전망치 관련 발언도 마찬가지다. 이 총재는 국내 경제성장 흐름이 다소 완만해졌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달 발표될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는 데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대외 여건 변화에 비춰 볼 때 하방 리스크가 조금 더 커졌기 때문에 2.6%의 올해 성장 전망치를 내놨는데 전망을 바꿔야 할 정도인지는 좀 더 짚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벌어지고 나서 뒤늦게 한은도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뒷북친 탓에 서민들은 금리 문제로 타격을 받았다.
이 총재는 연임 1주년에 대한 소회로 소신껏 하라고 해도 알게 모르게 연구 담당자들은 위축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작년 7월 하반기 국회 업무보고 첫날 국회도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가 부탁드렸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은 쓴소리하라고 국민이 뽑은 사람들이다. 그 쓴소리가 무서워 경제 전문가로서 해야 할 말을 못하고 우유부단함을 고수한다면 금리정책 등 한은 수장이 이끌고 가야할 배는 산으로 갈지도 모른다.
한현주 기자 han091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