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한 번 때를 놓치면 다음해나 되어야 볼 수 있는 게 꽃이다. 그까짓 꽃 하나쯤 못 본들 어떠냐고 말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숲에 와서 꽃을 못 본다면 극장에 왔다가 영화를 보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나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다. 생생한 기운이 넘쳐나는 오월의 숲을 찾는 사람이라면 고요를 택하는 대신 새로이 피어나는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해볼 일이다.
제법 오랫동안 꽃을 보아왔음에도 세상엔 여전히 아는 꽃보다 모르는 꽃이 훨씬 더 많다. 그런 사실들이 때론 나의 의욕을 꺾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대한 자연 앞에 옷깃을 여미게 하고 나로 하여금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며칠 전에 괴불나무 꽃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인동꽃을 쏙 빼닮아서 꽃만 보면 영락없는 인동꽃인데 덩굴로 뻗는 인동덩굴과는 달리 괴불나무의 꽃은 이름처럼 덩굴이 아닌 나무에 핀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 타원형 또는 피침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잎 표면에는 털이 거의 없으나 뒷면 맥 위에는 잔털이 많다. 꽃이 피는 시기는 신록이 초록으로 짙어지는 5~6월로 잎겨드랑이에서 순백색의 꽃이 핀다. 꽃에서는 맑고 달콤한 향기가 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흰색은 노란색으로 변해 가는데 그 변색의 이유가 놀랍기만 하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그 자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살아가야 하는 식물들은 집중과 선택을 통하여 진화를 거듭하며 지구상에 살아남았다. 그런 까닭으로 모든 식물들은 허투루 힘을 쓰는 법이 없다. 꼭 필요한 곳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목표하는 바를 이루어 나간다.
꽃의 색이 변하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금을 떠올리고 은을 연상하지만 무색하게도 꽃들은 사람들에겐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다. 괴불나무 꽃의 변색은 수분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 표식일 뿐 아니라 자신의 수분을 도와준 벌에 대한 일종의 배려이기도 하다. 수분을 마쳤다는 것은 곧 벌이 다녀갔다는 것과 같다. 당연히 꽃 속엔 꿀도 없을 터, 혹시라도 벌들이 꿀을 따러 찾아오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배려가 변색의 비밀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괴불나무는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가을에 열리는 붉은 열매도 꽃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정원에 심어두면 봄에는 꽃을, 가을엔 열매를 즐길 수 있다. 열매는 식용하고 민간에서는 이뇨·해독·종기·감기·지혈 등에 사용하고 잎을 약으로 썼다.
초록이 짙어질수록 흰색 꽃이 많아지는 것은 곤충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한 꽃들의 전략이다. 최대한 자신이 지닌 장점을 드러내어 목적하는 바를 이루되 자신의 수분을 도와준 벌들에게는 반드시 달콤한 꿀로 보상을 해주는 꽃에 비하면 온갖 술수와 화려한 거짓말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드는 인간의 이기심은 부끄러울 따름이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울 수 없는 이유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