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나무는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가을에 익는 붉은 열매가 산딸기와 흡사하여 산딸나무란 이름을 얻었다. 여름 들머리에서 순백의 꽃들로 한껏 성장을 한 산딸나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소확행(小確幸)이라 할 수 있다. 순결한 꽃송이를 바라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그 꽃 속에 숨겨진 비밀들을 알고 나면 말 없는 나무들의 지혜로움에 경외감마저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식물들의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는 허투루 힘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딸나무 꽃은 멀리서 바라보면 온통 흰 빛이지만 자세히 다가가 보면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우리가 흔히 꽃으로 여기는 네 장의 흰 꽃잎은 꽃차례를 싸고 있는 포라는 식물기관이 변한 것이고 실제의 꽃은 한 가운데 동그랗게 모여 있다. 꽃 하나하나는 매우 작아 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공모양의 좀 더 큰 꽃을 이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껏 우거진 초록숲속에서 그 꽃만으로는 곤충들을 유혹하기엔 힘에 부치는 터라 다시 한 번 꽃차례를 싸고 있던 포(苞)라는 부분을 변신시켜 곤충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희고 큰 꽃 모양을 이룬 것이다.
산딸나무는 꽃잎을 닮은 네 장의 포가 마주 나서 십자가처럼 보인다. 특히 서양산딸나무는 포 끝에 못 자국 비슷한 게 있다. 이 때문이었는지 한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든 나무라는 소문이 돌아 교회마다 다투어 이 나무를 구해 심었다. 하지만 산딸나무의 원산지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등으로 예수가 살았던 지역과는 거리도 멀고 서식환경이 확연히 다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가 이런저런 모순으로 낭설로 밝혀지면서 심어졌던 많은 나무들이 베어지고 캐어내 버려지는 수난을 겪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수난을 당했음에도 산딸나무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다. 묵묵히 모든 고통을 감내하면서 해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가지 가득 청초한 꽃을 내어 단다. 수시로 마음이 바뀌는 인간들과는 달리 어떤 고난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저버리는 일 없이 묵묵히 초여름의 숲을 환히 밝힌다. 산딸나무뿐만 아니라 초록 목숨을 지닌 모든 식물들이 다 그렇다. 꽃을 보면 볼수록, 오랜 세월 숲을 지키고 있는 말없는 나무들에 대해 알면 알수록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대하는 일이 조심스럽다. 꽃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며 오만에 가득 차있던 우리들의 최소한의 염치가 아닐까 싶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