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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쥐똥나무 꽃이 전하는 여름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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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쥐똥나무 꽃이 전하는 여름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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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유월의 첫 휴일, 아침 산책길에 소공원을 지나다가 그윽한 향기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었다. 내게 향기로 말을 걸어온 것은 다름 아닌 쥐똥나무였다. 초록의 잎 사이로 자잘한 흰 꽃송이들을 내어달고 향기를 풀어놓고 있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자잘한 꽃들이지만 그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는 소공원의 허공을 넉넉히 채울 만큼 짙고도 그윽하다.

녹음 짙은 여름철에 피어나는 꽃 중엔 유독 흰색 꽃이 많다. 그것은 허투루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식물들의 전략이라고 한다. 흰색의 꽃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대부분 향기가 강해서 온갖 악취들을 중화시킬 뿐 아니라 꿀을 많이 머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꿀의 대부분이 아카시나무 꽃을 비롯한 이 하얀 꽃들로부터 가져온 것들이다. 특히 쥐똥나무 꽃처럼 작은 꽃들은 색을 내는데 아무리 공을 들여도 초록 기운에 압도되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쉽지 않다. 꽃의 색을 내는데 헛심쓰기 보다는 향기로 수분을 도와줄 조력자를 부르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식물들은 오랜 시간 진화를 거듭하면서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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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

쥐똥나무는 한국과 일본이 원산으로 물푸레나무과의 낙엽성 관목에 속한다. 쥐똥나무 꽃이 피면 여름이다. 늦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피는 쥐똥나무의 꽃은 흰색이다. 얼핏 보면 보잘 것 없는 자잘한 꽃이지만 그 이름과는 달리 맑고 그윽한 향기를 지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나무인데도 평소에는 있는 줄도 모르다가 향기를 맡고서야 비로소 그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나무가 쥐똥나무다.

이 나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좋은 이름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쥐똥나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고개가 갸웃해지곤 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쥐똥나무라는 이름은 꽃이 아닌 열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가을에 줄기에 달리는 둥근 열매의 색깔이나 모양이 꼭 쥐똥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까만 열매는 잎이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달린 채 겨울을 난다. 열매가 검은색이라서 ‘검정알나무’라는 이명으로도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류의 쥐똥나무가 자라는데 반상록성인 왕쥐똥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남아 있고 열매도 훨씬 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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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

쥐똥나무의 주된 용도는 생울타리용이다. 도시의 도로변이나 공원의 울타리는 대부분 쥐똥나무다. 추위에도 강하고 공해에도 잘 견딜 뿐만 아니라 전정이 쉽고 잔가지가 빽빽하게 잘 나오므로 일정한 높이와 모양대로 반듯하게 다듬어 놓으면 근사한 녹색의 울타리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울타리 외에 분재의 소재로도 이용하고, 정원에 심어 동물의 모양이나 어떤 형상을 만드는 정형수로 쓰이기도 한다. 가지가 V자 모양이어서 새총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어서 예전에는 시골에서 아이들이 이 쥐똥나무로 고무줄 새총을 만들어 놀기도 했다. 쥐똥나무 열매는 생약명으로 ‘수랍과’라고 부르며, 채취하여 햇볕에 말렸다가 물과 함께 달여서 복용하는데 강장, 지혈, 지한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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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

한 번 뿌리 내리면 그 자리에서 일생을 살아가는 식물들은 열매일 때 단 한 번 여행을 떠난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단 한 번의 여행에도 반드시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 꽃의 화려한 색도, 그윽한 향기도 그 누군가를 향한 소리 없는 외침에 다름 아니다. 쥐똥나무 꽃의 향기는 벌 나비를 유혹하는 꽃의 언어이고, 우리가 쥐똥을 닮았다고 이름 붙인 그 까만 열매는 노랑 주황으로 물든 가을 숲에서 새들의 눈에 더 잘 띄기 위한 소통 방식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식물들은 우리에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저마다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자신의 종족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조력자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따름이다. 공짜 구경꾼에 불과한 줄도 모르고 작명가를 자처하며 함부로 이름을 붙인 인간의 오만을 아는지 모르는지 쥐똥나무 꽃은 오늘도 여름향기를 풀어놓고 있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