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중랑천의 둔치 꽃밭엔 화려한 색의 코스모스가 물결치고 있다. 연보라색 쑥부쟁이와 흰 구절초 같은 국화과의 꽃들이 부쩍 눈에 띄는 걸 보면 천변엔 이미 가을이 깊은 모양이다. 모처럼 가을 향기에 취해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 자전거를 달리던 나를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멈춰 세운 꽃은 다름 아닌 과남풀이었다.
과남풀이란 이름은 관음초(觀音草)로 불리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바뀐 것이라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과남풀은 늦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 막바지까지 꽃을 피운다. 개화기간이 길어 화단에 심어두면 보랏빛으로 가을을 더욱더 그윽하게 만들어 준다. 꽃은 줄기 끝과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에 여러 개가 달리는데 꽃 밑에 붙은 잎은 화관보다 길다. 꽃받침은 종 모양이며 5~6갈래로 갈라진다. 키가 50~60㎝ 정도인 용담에 비해 키가 큰 편이어서 큰잎용담이라고도 부르는데 전국 산야에 걸쳐 자라는 우리 꽃 중에 하나다.
꽃을 알아 가면 갈수록 내가 아는 꽃보다 모르는 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도 수시로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들로, 산으로 꽃을 찾아나서는 것은 자연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자연은 어머니의 품을 닮아있다. 늘 곁에 있으면서도 나의 시선과 마음을 묵묵히 받아줄 뿐 결코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 어머니처럼 언제나 나를 포근히 감싸 안아준다.
어떤 빛깔을 오래 바라본 뒤에 갑자기 흰 종이로 시선을 옮기면 보색의 영상이 보이는 현상을 보색잔상(補色殘像)이라고 한다.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듯 어쩌면 우리가 꽃을 보고 자연을 찾는 이유도 우리의 DNA 속에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했던 기억이 보색잔상처럼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좋아 어디로든 길 떠나고픈 가을, 멀리 갈 수 없다면 가까운 숲이라도 찾아 그 곳에 피어 있는 꽃들의 안부를 묻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운이 좋으면 우아한 가을 여인 같은 과남풀 보랏빛 꽃을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을 테니.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