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꽃보다 아름다운 요즘, 오색단풍의 화려함을 제치고 순결한 흰빛으로 피어나 향기로 가을 허공을 채우는 꽃이 있다. 다름 아닌 구절초(九節草)다. 구절초는 가을의 산과 들을 수놓는 감국, 산국, 개미취와 더불어 대표적인 야생 국화 중 하나다. 국화는 신이 마지막으로 만든 꽃이라고 전한다. 수많은 야생국화 중에 굳이 한 가지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구절초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구절초는 야생국화 중에 꽃도 가장 크고 향기도 뛰어날 뿐 아니라 흰색의 꽃빛은 오색단풍으로 물든 산 빛에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기 때문이다. 선모초(仙母草)란 이명에선 구절초가 약으로써 얼마나 긴요하게 쓰였는지 짐작케 한다.
구절초엔 특이하게 이름 속에 '9'라는 숫자가 들어 있다. 동양문화에서 '9'는 매우 중요한 숫자로 여겨져 왔다. 민간신앙에서 길상을 의미하는 숫자일 뿐 아니라 한자로는 오랠 구(久)자와 발음이 같아 건강함과 영원함을 상징한다. 양수인 '9'가 겹치는 9월 9일을 '중앙절'이라 하여 각별한 의미가 담긴 명절로 자리 잡은 것도 비슷한 이유다. 구절초란 이름의 유래에도 '9'와 관련이 깊다. 재액을 물리치고 불로장생을 위해 음력 9월 9일 중앙절에 국화주를 담가 마신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고, 오월 단오엔 다섯 마디가 되고 음력 9월 9일에 아홉 마디가 되어 구절초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홉 번 죽었다 다시 피어도 첫 모습 그대로 피어난다'는 어느 시인의 시의 한 구절이다.
포천구절초는 내 고향인 포천의 한탄강 지역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름을 얻은 꽃이다. 한탄강과 운악산의 암벽지대에 자생하는 포천구절초는 2003년 포천군이 시로 승격하면서 포천시의 시화(市花)로 선정되었다. 별칭으로는 포천가는잎구절초, 가는잎구절초로도 부른다. 변종명의 tenuisetum는 잘게 갈라진다는 뜻으로 잎이 다른 구절초에 비해서 많이 갈라지는 게 특징이다.
꽃은 여느 구절초와 다름없이 9~10월에 피는데 약간 담홍색이 돌고 꽃대 끝에 하나씩 달린다. 줄기는 50㎝까지 자라는데 털이 거의 없다. 습기가 많고 볕이 잘 드는 냇가 근처나 해발 700m 이상의 정상 부근의 서늘한 곳에서 자란다. 자생지가 제한되어 개체수가 많지 않지만 생명력이 강하고 인공번식이 가능하므로 다른 구절초를 식재하기 어려운 곳에 식재해도 잘 자란다. 특히 포천구절초는 야생국화 중에 꽃이 큰 편이라서 꽃꽂이에 적합할 뿐 아니라 식용, 약용, 관상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구절초의 꽃말은 순수, 어머니의 사랑이다. 꽃은 어느 곳에 피어도 아름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리운 어머니처럼 포천구절초가 내 고향의 이름을 지닌 꽃이어서 더 사랑스러운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