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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산마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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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산마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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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명이나물 장아찌가 택배로 왔다. 몇 해 전, 울릉도에서 여름을 보낼 때 내가 묵었던 울릉콘도에서 보내온 것이다. 명이나물 장아찌가 담긴 택배상자를 풀다가 고두현 시인의 ‘늦게 온 소포’ 한 구절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비록 어머님의 겨울 안부는 아닐지라도 한때의 인연을 잊지 않고 꽁꽁 싸매 보내온 귀한 명이나물 장아찌를 받고 보니 고마운 마음에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명이나물의 본래의 이름은 산마늘이다.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달래나 마늘처럼 독특한 향과 매운맛을 지녔으나, 파, 부추, 달래와는 달리 잎이 넓고 식물 전체에서 마늘 냄새가 나는 산야초다. 이 산마늘이 '명이나물'이 된 것은 조선시대에 울릉도로 이주해 간 사람들이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게 되었을 때 눈 속에 새로 올라오는 산마늘 싹을 뜯어 먹으며 목숨을 이어서 목숨을 뜻하는 명(命)을 이어준 나물이라는 의미로 명이나물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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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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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늘 꽃

울릉도의 해발 800m 이상 지역에서 자생하는 산마늘은 요즘은 수요가 크게 늘면서 강원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그런데도 역시 수요를 따르지 못하여 최근엔 값싼 중국산이 다량 수입되어 팔리고 있다. 중국산은 국내산보다 잎이 가늘고 얇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산마늘의 잎은 1년에 새순이 1개씩만 자라기 때문에 제대로 수확하려면 적어도 4~5년은 기다려야 한다. 잎은 커다란 타원형으로 2~3개씩 달리는데 울릉도 산마늘은 내륙에서 자라는 산마늘에 비해 잎이 훨씬 크고 넓은 게 특징이다. 꽃이 피면 미량의 독성이 생기기 때문에 잎은 꽃이 피기 전인 이른 봄에 채취해야 한다.

눈이 채 녹기도 전인 2월이면 새싹이 올라오고 잎이 달린 포기 사이에서 꽃대를 길게 밀어 올려 5월부터 유백색의 꽃을 피운다. 작은 꽃들이 모여 공처럼 둥근 꽃차례를 만들며 피어나는데 화려하진 않아도 순박한 섬 처녀처럼 수수한 모습이 오히려 사랑스럽다. 그 수수한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화단에 심어 두고 꽃을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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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산마늘을 '행자마늘'이라 하는데 수도승들이 고행에 필요한 체력과 정력을 얻기 위해 즐겨 먹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산마늘은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산야초로 인기가 높다. 생으로 쌈을 싸 먹기도 하며 삶든가 데쳐서 초무침, 튀김, 볶음샐러드 등 다양하게 조리할 수 있고 오래 두고 먹기 위해 장아찌를 담거나 묵나물로도 이용한다.

식용뿐만 아니라 약용으로 쓰일 때에도 마늘보다 효능이 뛰어나, 한방 및 중국에서는 산마늘의 비늘줄기를 각총(茖葱)이라 하여 자양강장제의 으뜸으로 친다. 뿐만 아니라 해독 및 동맥경화, 이뇨, 당뇨, 피로 회복, 감기, 소화기 계통에도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생화를 일러 색(色) 향(香) 미(味)를 간직한 자연의 선물이라고 한다. 눈길을 사로잡는 꽃의 색과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쉬게 만드는 꽃의 향기, 그리고 절로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하는 맛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명이나물 장아찌를 먹을 때마다 나는 울릉도의 산마늘 꽃을 생각하고 그 섬에 불던 바람과 파도소리를 떠올릴 것이다. 한때의 인연을 잊지 않고 정성 가득한 선물을 보내준 고마운 이를 생각하며 이 추운 겨울을 건너갈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