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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의 경고등 '매화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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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의 경고등 '매화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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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세모의 끝에 서면 늘 보람된 일보다는 후회되는 일이 더 많다. 최선을 다해 살고자 노력했으나 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그런데도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일주일에 한 편씩 이 지면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꽃들을 소개한 일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숲 해설가 국가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다. 숲 해설가는 꽃만이 아니라 숲의 모든 것을 소개하고 사람들을 숲으로 안내하는 사람이니 내게 딱 어울리는 일이기도하다.

숲 해설가에게 꽃이 사라진 겨울은 눈이 없는 크리스마스와 같다. 하지만 꽃을 볼 수 없는 것은 안타깝지만 숲에 관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며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엔 더없이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심매(尋梅)라 하여 꽃빛이 그리운 옛 선비들은 눈 속에 핀 매화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는데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을 펼쳐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들을 알아보다가 매화마름에 눈길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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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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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마름.

이름조차 생소한 매화마름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물에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의 길이가 50㎝ 정도로 가늘고 길며, 속이 비어 있고 마디에서 뿌리가 난다. 4~5월경이면 피는 꽃은 흰색으로 지름이 1㎝ 남짓 된다. 매화마름이란 이름은 꽃 모양이 매화를 닮고 잎은 붕어마름과 흡사하여 붙여진 이름일 뿐 물매화가 그렇듯이 매화마름 역시 매화와는 전혀 다른 집안의 식물이다. 매화마름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인근의 영등포에서도 채집될 정도로 흔하디흔한 풀이었다. 하지만 농약과 화학비료의 남용과 개발로 인한 대부분의 연못과 습지가 파괴되면서 거의 자취를 감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강화도 일대와 서해안 일부 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2급인 수생식물이다.
농기계의 보급이 많지 않던 시절, 모내기를 위해서 논 가득 자란 매화마름을 일일이 손으로 제거해야 했기 때문에 농부에겐 벼농사를 망치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잡초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매화마름은 겨울철 논에 담수상태를 유지해야 성장할 수 있는 까다로운 생육조건을 지니고 있다. 또한 다음 해에도 매화마름 꽃을 보려면 매화마름의 씨앗이 영글어 떨어질 때까지 모내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 꽃이 피고 씨가 떨어져야지만 다음해에도 다시 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 담수를 하면 수확량이 줄고 일찍 모내기를 할 수 없다 보니 농부에겐 매화마름은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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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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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마름.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매화마름 군락지가 있다. 이곳 군락지는 1998년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인 현진오 박사가 강화도 일대를 여행하던 중 처음으로 발견했다. 당시 이 지역은 주민들의 민원으로 경지 정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현 박사는 멸종위기종인 매화마름 대규모 군락지의 생태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내셔널트러스트와 연계하여 보전 활동을 벌여 200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보존 후보지로 선정하였다. 2008년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논’으로는 세계 최초의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어 세계적으로 그 보전가치를 인정받았다.

강화매화마름 군락지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매입하여 영구 보존하고 있는 시민 유산 1호다.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 및 증여를 통해 보존 가치가 있는 자연 자원과 문화 자산을 확보하여 시민 주도로 영구히 보존 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이다. 한 번 사라지면 되돌릴 수 없는 멸종위기식물을 보존하고 지켜내는 것은 당연한 우리의 책무다. 우리가 누리는 이 아름다운 자연은 미래 세대에게 잠시 신탁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작은 들꽃 한 송이 피어나는 데에도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