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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사 진단] 구글 시가총액 1조 달러, 선다 피차이(Sundar Pichai)의 힘 … 뉴욕증시+크롬+ 안드로이드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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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사 진단] 구글 시가총액 1조 달러, 선다 피차이(Sundar Pichai)의 힘 … 뉴욕증시+크롬+ 안드로이드 신화

구글 CEO 누구? 순다르 피차이인물연구,필자 김대호 박사는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으로 세계경제와 기업분석 등에 매진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 MBN -TV 동아일보 한경와우TV 등에서  경제부장 해설위원 워싱턴특파원 등으로 활약했다.고려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수로도 재직했다 전화 010 2500 2230           이미지 확대보기
구글 CEO 누구? 순다르 피차이인물연구,필자 김대호 박사는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으로 세계경제와 기업분석 등에 매진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 MBN -TV 동아일보 한경와우TV 등에서 경제부장 해설위원 워싱턴특파원 등으로 활약했다.고려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수로도 재직했다 전화 010 2500 2230
구글이 시가총액 1조원을 넘어섰다.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은 지난 주말 뉴욕증시 나스닥 거래소에서 12.50달러(0.87%) 오른 1451.70달러에 마쳤다.
주가에 발행주식 수를 곱한 구글의 시가총액은 1조 10억 달러를 기록했다. 우리돈으로는 1200조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꿈의 시총'으로 불리는 1조 달러를 웃돈 것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아람코에 이어 전세계적으로 이번이 5번째다.
그중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를 제외 한 4 기업이 모두 뉴욕증시 나스닥에서 나왔다. 의 정보·기술(IT) 공룡들이다.

구글은 미국 서부명문 스탠퍼드대 동료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지난 1998년 집 차고에서 구글을 설립한 회사다.

그 두 창업자는 2019년 12월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시총 1조달러는 순다르 피차이 체제에서 나왔다. 창업주 오너들이 물러난 후 구글은 순다르, 피차이 체제에서 더욱 빛나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CEO는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한 이민자이다.

피차이는 1972년 인도 타밀 나두(Tamil Nadu) 주에서 태어났다. 자란 곳은 첸나이 지방이다. 피차이 아버지는 전기기술자였다.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피차이는 가난한 집에서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컴퓨터 구경도 해보지 못했다.

피차이의 암기력에 주목한 그의 부모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피차이를 대학에 보냈다. 피차이는 인도 공과 대학(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카라그푸르(Kharagpur) 캠퍼스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컴퓨터와 무관한 야금공학을 공부했다.

1993년 스탠퍼드 대 장학생으로 선발 되었다. 스탠퍼드 에서 재료공학 석사를 이수한 후 미국 기업에 취업했다. 첫 번째 직장은 반도체 제작 장비를 만드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였다. 엔지니어로서의 삶을 살다가 펜실바니아 대학 왓슨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이수했다. 이후 맥킨지컨설팅그룹에서 반도체 관련 컨설팅을 진행하다가 2004년 구글에 합류했다.

피차이가 구글에서 처음 배속된 곳은 인터넷 익스플로러(IE)용 '구글 검색 툴바'를 만드는 부서였다. 그 때 구글은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구글을 견제하기 위해 IE의 기본 검색 엔진을 자사의 검색 서비스 '빙(Bing)'으로 지정해버린 것이다. 구글 검색의 방문자가 급감할 수 밖에 없었다.

피차이는 바로 그 시기 검색 툴바 매니저로서 PC 제조사에 방문해 구글 검색 툴바의 유용성을 알리고 다녔다. 이러한 피차이의 노력 덕분에 구글 검색의 점유율이 빙에게 크게 잠식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피차이는 그 과정을 통해 웹 브라우저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피차이는 구글이 인터넷 검색 시장과 광고 시장에서 그 지위를 유지하려면 웹 브라우저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미트 등 구글 경영진과 독대해 구글이 자체 웹 브라우저를 개발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래리 페이지는 구글이 직접 웹 브라우저를 개발해야 한다는 피차이의 말을 경청했다. 그 자리에서 즉시 웹 브라우저 개발을 위한 팀을 꾸리기로 결정했다. 그러고는 피차이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앉혔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크롬(Chrome)'이다. 크롬은 빠른 속도, 웹 표준 준수, 간결한 사용자 환경, 지속적인 업데이트 등을 내세우며 헤비 유저(Heavy Internet Users0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점유율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크롬이 등장하자 한 동안 웹 브라우저 기능 업데이트에 소홀했던 MS가 새로운 버전의 IE를 선보이며 크롬 견제에 나섰으나 구글의 크롬 기세에 역부족이었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웹 표준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웹 표준을 제대로 잘 준수하던 크롬의 점유율은 크게 상승했다. 그 결과 2016년 1월부터 크롬이 IE를 제치고 점유율 1위의 웹 브라우저로 올라서게 되었다.

크롬은 구글의 모든 인터넷 서비스와 일체화되어 있다. 크롬을 실행하면 그 첫 화면에 구글 검색이 뜨고 주소창에 단어를 입력하면 구글 검색에 연결된다. 크롬에 구글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지메일, 지드라이브, 캘린더 등 구글의 모든 서비스를 바로 이용할 수 있다. 크롬의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검색, 이메일 등 구글의 인터넷 서비스 사용자도 함께 늘어났다. 크롬이 웹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구글도 검색, 이메일 등 인터넷 서비스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피차이는 크롬 성공의 공로를 인정받아 구글 부사장으로 올랐다

2010년에 들어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출시하고 모바일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 안드로이도 팀도 피차이가 이끌었다. 그 시절 피차이는 '안드로이드 원'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안드로이드 원이란 인도 등 제 3세계 사용자에게 보급하기 위한 저렴한 스마트폰이다. 안드로이드 원을 통해 피차이는 인도 시장이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에게 잠식되어 구글 인터넷 서비스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막고 인도에 구글의 인터넷 서비스를 보급할 수 있었다.

2015년 구글은 지주회사 알파벳을 설립했다.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미트등은 알파벳의 경영진으로 자리를 옮겼다. 구글의 경영은 피차이에게 맡겨졌다. 크롬과 안드로이드라는 구글의 주력 서비스를 성공시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2015년 10월 구글의 최고경영자로 임명되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