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명절이 아니라도 나는 고향에 내려오면 시간을 쪼개어 마을 안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산을 오르곤 한다. 그때마다 자주 찾는 숲이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누이동생과 함께 심은 이깔나무 숲이다. 그 숲에서 떠올리는 유년의 추억은 감미롭기만 하다. 이제는 아름드리에 가까운 거목이 된 나무의 수피를 쓰다듬기도 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거닐며 숲에 이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보기도 한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온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단숨에 나를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돌려놓는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아련한 추억들을 하나하나 되살리는 것도 숲에서 느낄 수 있는 각별한 즐거움이다.
미국의 환경보호론자인 존 뮤어는 우리가 숲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 한다. "숲에 가면 그 기운을 흠뻑 마셔라. 햇빛이 나무 사이로 흘러들어 오는 것과 같이 자연의 평화가 우리에게 흘러 들어올 것이다. 바람이 신선함을, 그리고 에너지와 열정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걱정은 가을의 낙엽과 같이 떨어져 없어질 것이다."라고.
꽃과 잎을 모두 내려놓고 흰 눈을 이고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 엄숙한 구도자의 모습 같아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작은 나무는 작은 나무대로 제가 차지한 허공만큼만 눈꽃을 피운 나무 사이를 거닐다 보면 과장된 몸짓으로 허세부리며 살아온 날들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산짐승도 지나가지 않은 푸른 새벽의 숫눈 위에 내 발자국을 찍으며 걷노라면 한 걸음 한 걸음이 마냥 조심스러워 진다. 눈 내린 정갈한 새벽의 숲은 마치 숲 전체가 커다란 사원 같아서 나도 모르게 기도하는 사람처럼 마음이 경건해진다.
옛 인도의 아쇼카 왕은 사는 동안 다섯 그루의 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그 다섯 그루의 나무란 첫째가 치유력이 있는 약이 되는 나무이다. 둘째는 열매를 맺는 유실수, 셋째는 연료로 쓰일 수 있는 땔나무, 넷째는 집을 지을 때 재목이 될 나무, 다섯째는 꽃을 피우는 꽃나무를 일컫는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말은 유효하고,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귀한 가르침이다. 인간의 불행은 자연과 멀어지면서 시작되었다면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그 누구도 부정하긴 어렵다. 저자거리에 나가 마음이 탁해졌단 생각이 들면 숲을 찾아갈 일이다. 비록 다섯 그루의 나무는 심지 못했더라도 자주 숲을 찾아 나무들의 말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볼 일이다. 그리하면 답답하던 가슴이 툭 트이고 새로운 지혜가 꽃처럼 피어 그대의 생이 향기로워질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