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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화야산 꽃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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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화야산 꽃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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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꽃의 시간은 짧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말처럼 꽃은 짧은 시간 눈부시게 피어났다가 속절없이 지고 만다. 그때를 놓치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꽃을 보는 일은 곧 때를 알아차리는 일이라고도 한다. 코로나19로 바깥출입이 조심스러운 시절임에도 내가 가평 화야산으로 꽃산행을 감행한 이유다. 가평 화야산은 수도권에서 가장 먼저 봄꽃의 여왕으로 불리는 얼레지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피어나는 야생화 천국이다.
​어느 시인은 '사월이면 바람나고 싶다'고 했지만,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이 계절에 꽃바람 나고 싶지 않은 이가 누가 있으랴. 화야산을 향해 차를 달리는 동안 도로변의 산들은 어느새 겨울 빛을 지우고 연록의 새 옷을 갈아입느라 부산한 모습이다. 북한강을 건너 화야산 들머리에 차를 세우고 얼레지의 화려한 꽃밭을 상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레지는 산의 들머리에서부터 계곡을 따라가며 무리 지어 피어 있어 일부러 찾지 않아도 쉽게 눈에 띄었다. 햇살의 간질임에 꽃잎을 활짝 뒤로 젖힌 얼레지의 모습은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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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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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단풍
두 장의 푸른 잎을 땅 위에 펼치고 앉아 목을 길게 빼고서 화사하게 연보랏빛으로 물들인 머리를 뒤로 활짝 젖힌 모습은 가히 여왕의 자태라고 할 만큼 요염하고 기품마저 느껴진다. 그 요염한 자태 때문이었을까?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다. 백합과 식물인 얼레지의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화피'다. 화피란 꽃잎과 꽃받침이 서로 비슷해 구별하기 어려울 때 이들을 모두 합쳐 부르는 말이다. 얼레지는 볕이 잘 들면 보라색 화피가 뒤로 활짝 젖혀진다.

물소리 명랑한 계곡을 따라가며 피어나 바람을 타고 있는 얼레지 꽃무리를 보니 마치 봄 소풍 나온 여인들 같다. 이곳에선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이지만 씨앗이 떨어져 꽃을 피우기까지는 거의 7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5월경에 씨앗이 땅에 떨어져 묻히면 1년 후에 이파리 하나 나고, 3년 있다가 이파리 2개가 나온다. 그렇게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기까지 무려 7년이나 걸리니 꽃 한 송이 보는 일이 절대 간단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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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도리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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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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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노루귀

화야산으로 얼레지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운이 좋으면 흰얼레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아직 흰얼레지를 직접 만난 적 없음으로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볼 수는 없었다. 흰얼레지를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은 워낙 귀하기도 하지만 어쩌다 눈에 띄어도 자기만 좋은 사진을 찍으려는 양심 없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은 뒤에 꽃을 꺾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도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타지마할을 세운 후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남기기 위해 공사에 동원됐던 2만여 명의 손목을 자른 샤자한처럼 인간의 욕심이란 정말 끝이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꽃은 인간을 위해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식물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면 꽃을 꺾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을 것이다.

화야산은 야생화 천국이라서 얼레지 외에도 수많은 봄꽃들이 피어난다. 소가 먹으면 미친듯이 날뛴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미치광이풀도 있고 애호랑나비가 좋아하는 족도리풀도 있다. 노란색의 양지꽃, 금붓꽃, 피나물꽃과 청색의 현호색, 보랏빛 제비꽃도 피어 있다. 한나절 산속을 거닐며 꽃에 취하다 보니 어느새 설핏 해가 기울었다. 산을 내려오며 바라본 계곡 건너편의 귀룽나무는 연두를 지나 초록으로 치닫고 있다. 세상은 코로나19로 신음을 해도 계절은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고 오고 간다. 하루빨리 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눈부신 꽃을 맘껏 만날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