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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코로나 블루와 팔여거사(八餘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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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코로나 블루와 팔여거사(八餘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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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답답하고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우울감을 호소한다. 올 초부터 계속된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후유증이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우울증)'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인생을 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게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감옥에 갇힌 두 죄수가 한 사람은 쇠창살 너머로 하늘의 별을 보고, 다른 한 사람은 흙탕길을 바라보는 것과도 같다.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상 풍경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풍경도 자연스럽게 바뀌기 때문이다.

자연(自然)이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면, 일상 또한 자연이라고 해도 될 법하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면 삶은 더욱 즐거워 질 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모든 일상생활이 억눌린 듯 답답하고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우울감을 떨쳐 버리는 데에는 자연만 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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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30분간 숲길 2㎞를 걷는 것만으로도 경관, 햇빛, 피톤치드 등 다양한 숲의 치유 인자로 인해 긴장, 우울, 분노, 피로 등의 부정적 감정을 70% 이상 감소시킨다고 한다. 숲은 오감을 자극해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고, 자율신경의 균형을 조절해 면역력을 높여주므로 숲을 찾는 것만으로도 고립과 격리로 인한 답답함이나 우울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나의 하루는 늘 도봉산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창문을 열고 도봉산을 바라본다. 날마다 바라보는 산이지만 매일매일 새롭게 다가온다. 어느 날은 쨍한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숄을 걸친 여인처럼 안개를 산허리에 휘감고 은근한 눈빛을 건네기도 한다. 아침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가 점점 초록으로 짙어지는 매혹적인 산 빛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집을 나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자연은 마음의 문을 열고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호기심이 강한 사람들에게 그 존재를 깨닫게 해주기도 하고, 자연의 대상들을 감성적인 눈으로 보고 관찰하게 되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비밀을 은밀히 가르쳐 주기도 한다. 자연을 관찰하는 사람은 결코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다. 자연을 관찰하는 행위, 그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넉넉히 채워주기 때문이다.

일부러 꽃을 찾아 먼 길을 떠나지 않더라도 집 근처의 소공원이나 가까운 숲을 찾아 오감을 열면 자연스럽게 자연이 말을 걸어올 것이다. 새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에 귀가 열리고 풀과 나무, 꽃들이 눈을 크게 뜨게 만들고 꽃향기, 숲 향기가 코를 뻥 뚫리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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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낙향한 김정국은 스스로를 팔여거사(八餘居士)라 칭했다. 팔여(八餘)란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말인데 다음과 같다.

"토란국에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는다네. 거기에다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니 팔여(八餘)가 아니겠나."

김정국이 말한 팔여(八餘)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자연친화적인 삶인 셈이니 한 번 곱씹어 볼 만하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