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얘기다.
이는 “이미 처리된 사건을 두 번 재판할 수 없다”는 우리 헌법의 기본 중 기본인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을 깨는 초법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해결된 현안을 부관참시하는 잔인함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부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된 ‘묵시적 청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법 교과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묵시적 청탁이라는 용어는 법원이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 싫어 궁색한 표현을 썼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논리학 관점에서 보면 법원이 법적 논증에 눈을 감고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fallacy of argumentum ad populum)’에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준조세(準組稅)의 희생양이다.
준조세는 법에도 없는 세금이다. 기업이 부담하는 각종 기부금과 성금이 준조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준조세가 법인세의 두 배가 넘는 141조 원에 달한다. 기업은 등골이 휠 지경이다.
우리 현실은 기업과 정부가 ‘죄수의 딜레마’로 점철됐다. 정부가 기업에 대한 각종 인허가, 세무조사,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 서슬 퍼런 칼자루를 휘두르는 데 이에 맞서 싸울 기업이 과연 있을까.
더욱이 이 부회장처럼 국가 최고 권력자가 청와대로 불러 지원 요청을 하는 데 이를 거절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이 당시 정권에 돈을 적게 낸 후 ‘괘씸죄’로 1985년 그룹이 공중분해 된 것은 한국 기업인들에게 배임죄 못지않게 두려운 죄목이 괘씸죄라는 것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이 부회장 이후 한동안 잠들어 있던 준조세가 최근 관 뚜껑을 열고 되살아나는 모습이다.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으로 피해를 보는 국내 농업부문을 돕기 위해 대기업으로부터 걷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대표적인 예다.
농어촌기금은 표면적으로는 기업들이 돈을 자발적으로 내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정부와 여당이 대기업 출연을 압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하소연이 쏟아진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정부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본 국민들을 돕기 위한 긴급재난지원금도 예외는 아니다.
애초 지원 대상이 소득 하위 70%에서 모든 국민으로 확대해 헬리콥터 머니를 뿌리는 정부가 이제는 기업 등에 기부를 기대하는 눈치다.
정부는 자발적인 기부라고 애써 강조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업이 과연 있을까.
“과거 정권이 하면 불법이고 현 정부가 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 아닙니까”라는 재계 관계자 호소는 처절함이 느껴진다.
작금의 상황은 이 부회장에게 돌팔매질을 한다고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치권이 준조세를 빌미로 삼성전자처럼 기업에 개입하면 제2, 제3의 이 부회장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정치가 기업 근처를 기웃거리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칵테일(lethal cocktail)’이 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준조세 김영란법’을 도입해보면 어떨까.
김민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entlemin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