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금융회사들은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키코상품을 판매했다. 그러나 키코는 환율이 범위를 벗어나면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이었다. 키코는 환위험 헤지를 위해 수출기업들이 다수 가입했는데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키코에 가입한 회사들은 손실을 보았다. 키코 가입 기업들은 키코 판매 은행들에 사기판매 의혹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사기가 아니라고 최종 판결했다.
키코 사태는 대법원 판결로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하면서 다시 조명됐다. 윤 원장이 소비자보호를 강조하며 키코 재조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키코 사건을 재조사한 후 은행들에 배상 권고안을 제시했다. 강제성이 있거나 의무가 발생하는 조치는 아니다. 은행들이 배상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말 그대로 권고다.
그러나 은행들은 고심에 빠졌다. 금감원의 권고대로 배상한다면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배임 등 법률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거부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감독기관인 금감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산업⸱씨티은행은 먼저 권고안을 거부했다. 신한은행⸱하나⸱대구은행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답변 기한 연장을 요청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키코 배상 문제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률 문제를 포함해 가능한 검토를 모두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부한 은행도 답변 연기를 요청한 은행도 모두 고심하고 있지만 금감원은 한발 물러서 있는 모습이다. 금감원은 감독기관으로서 책임을 다한 것처럼 보이면서 권고를 따르지 않는 은행들은 소비자보호를 외면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쉽게 해결될 문제로 보이지는 않는다.
차라리 금감원이 은행들에 피해기업들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는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고 금감원은 체면보다 소비자보호를 강조한 진짜 책임감 있는 감독기관의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