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마스크가 필수품이 된 후로 두 계절이나 바뀌었다. 그 와중에도 꽃들은 때를 잊지 않고 어김없이 피어나서 우울로 가득 찬 세상을 꽃빛으로 환하게 밝혀주었다. 날마다 꽃 피는 봄날일 수 없고 밤마다 달밤일 수는 없는 것처럼 피어난 꽃은 곧 지게 마련이고 달도 차면 기우는 게 자연의 섭리인 까닭이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러하지만 꽃을 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때를 맞추는 것이다. 꽃을 보아도 세월은 가고, 꽃을 보지 않아도 시간은 흐른다. 혹자는 먹고 살기도 팍팍한 세상에 그까짓 꽃을 보는 일이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잠시 가던 길 멈춰 서서 꽃을 볼 여유도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불쌍한 인생이냐고 반문하고 싶다.
비 온 뒤의 쾌청한 하늘을 보며 카메라를 둘러메고 꽃을 찾아 나섰다. 매일 오가는 골목길에서 마주쳤던 능소화 생각이 났다. 담장 밖으로 휘늘어져 탐스럽게 꽃을 피운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예전에는 서민들은 함부로 심을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양반꽃으로 불릴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던 꽃이다. 태양을 능멸하며 피는 꽃이란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담황색의 능소화는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당당한 모습이다. 서둘러 능소화를 카메라에 담고 나무 그늘이 좋은 소공원을 찾아가는 길에 아파트 화단에 키가 껑충한 왕원추리 꽃이 눈길을 잡아끈다.
도시 숲이라 할 수 있는 소공원 산책로엔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시원한 초록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나무 그늘이 좋은 탓인지 산책로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맨발로 걷는 황톳길 체험장엔 무릎까지 옷을 걷어 부친 사람들이 맨발로 걷고 있고 나무 그늘에 놓인 벤치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정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한가로움을 느끼게 한다. 작은 연못엔 노랑어리연과 화려한 색깔의 수련들이 함초롬히 피어 자태를 뽐내고,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부레옥잠은 바람에 이는 잔물결을 따라 물 위를 떠다닌다. 아직은 그 세력이 미미하지만 머지않아 부레옥잠은 연못을 뒤덮을 것이다. 물가에 핀 진분홍의 부처꽃엔 연신 나비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다. 보랏빛 비비추와 한껏 꽃봉오리를 부풀린 나리꽃도 곧 꽃망울을 터뜨릴 태세다.
베스트 셀러 ‘긍정의 힘’을 쓴 미국의 조엘 오스틴 목사는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했다. 그 말은 내가 자주 강조하는 “꽃을 보고 걸으면 가시밭길도 꽃길이 된다”는 말과도 맥이 닿아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도 “인생이 행복해지려면 좋은 음식, 좋은 집, 건강, 사랑, 성취, 존경과 같은 외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 말은 곧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갈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꽃길만 걷게 해 줄게.’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꽃길만 걸을 수는 없다. 걷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가시밭길도 만나고 가파른 비탈길도 만나게 마련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길을 걷는 자의 마음가짐과 길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감옥의 문창살 사이로 밖을 내다보는 두 죄수가 있다. 한 사람은 하늘의 별을 보고, 다른 한 사람은 흙탕길을 본다. 지금 서 있는 곳보다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다. 꽃길만 걷는 최고의 방법은 어둠 속에서 별을 찾는 사람처럼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꽃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선을 간직하는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