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필자에게 단비같은 책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다. 이 책을 쓴 피에르 바야르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파리 8대학의 문학교수이다. 그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해야 하는 자신의 실제 경험과 이 곤란함을 해결하기 위해 사유한 결과를 재미있게 풀어내었다. 문학교수로서 펼쳐보지도 않은 작품에 대해 강의를 하게 되는데 차라리 이건 나은 편이다. 그다지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책이나 논문에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논평을 남겼을 때는 차후에라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런 경험까지 녹여 냈다. 터부시되는 이런 경험을 공개하는 것은 대단히 용기가 필요하다.
우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다. 저자는 이 불가능한 완전독서를 완수하라고 채찍질하지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서가의 절반이라도 읽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 그의 태도는 오히려 반대다. 비독서도 하나의 독서로 본다. 책을 읽지 않는 것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읽었다 해도 대충 읽거나, 책에 대한 얘기를 그저 들었거나, 심지어 읽었더라도 잊어버리는 게 현실. '독서와 비독서 사이를 구분하기 어렵고 그 사이에 여러 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고찰은 우리가 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의무감이나 죄의식을 해소하도록 해준다.
책에 대해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텍스트는 고정적이고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을 가진 독자와의 대화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꾸며내고 자신의 생각을 펼쳐낼 필요가 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교육이 힘든 요즘, 독서와 온라인 토론을 결합한 형태의 교육을 기획하게 되었다. 줌(Zoom)으로 진행된 온라인 설명회에서 소개를 마치고 받은 질문중 '꼭 다 읽어야 하나', '읽지 않은 사람은 교육에 참석시키는가'가 있었다. 십여년 전 독서토론을 진행할 때부터 꾸준히 들어왔던 질문이다. 필자의 대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첫째,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둘째,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지 완독 여부가 아닙니다' 이다.
책은 어떤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확장하고 사유하게 하는 '도구'일 뿐인데, 도구를 '목표'로 삼는 경우가 있다. 책에 대한 내용을 묻고 답을 맞히는 등의 교육이 그것인데, 이는 성인을 어린 학생 대하듯 하는 잘못된 것이다. 학생에게 책은 교재인 경우가 다수로, 책은 학습의 대상이 되고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니까.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평문을 써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바야르 교수의 용기와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에 기대어 완독의 강박과 악몽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모든 지식근로자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읽지 않아도 괜찮아.
김선영 플랜비디자인 수석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