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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화상회의는 수평문화 만드는 절호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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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화상회의는 수평문화 만드는 절호의 기회

김철수 플랜비디자인 전문위원이미지 확대보기
김철수 플랜비디자인 전문위원
10년 전 한 중견 그룹이 사옥에서 매주 강연회를 열었다. 외부 명사가 트렌드를 강연하거나 내부 직원이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을 발표했다. 팀장 이상은 반 강제 참석이다 보니 수백 명이 들어가는 큰 강당에서 진행됐다. 첫 강연회에서 일찍 입장한 고위 임원들은 모두 뒷자리부터 앉았다. 그런데 하필 그룹 회장이 맨 뒤 가운데에 앉았다. 회장이 맨 앞줄에 앉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던 고위 임원들은 결국 회장과 나란히 붙어 앉아 숨 막히는 90분을 보내야 했다. 다음 주가 되자 모든 임원은 앞자리부터 채워 앉았다.

상사 옆자리에 앉기 싫은 마음은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한 회사가 올 초에 사내 팀장 100여 명이 모인 전사 경영회의를 화상회의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팀장 수십 명이 화상회의 운영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비디오 배치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단다. 다들 자기 비디오를 '다음 페이지'나 화면 구석으로 배치해달라는 것이었다. 담당자가 비디오 배치를 임의로 할 수 없다고 말해도 막무가내였단다. 어떤 팀장은 화상회의에 입장한 순서로 비디오가 배치되는 걸 알고 있으니 사장님은 언제 입장하시는지 알려달라고 졸라댔단다.
화상회의에서 내 비디오를 뒤나 구석으로 배치할 수 있을까? 당연히 가능하다.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다른 사람보다 늦게 입장한다. 화상회의 툴은 늦게 들어온 사람을 뒤로 배치한다. 둘째, 다른 사람보다 마이크를 늦게 켜고 말한다. 화상회의 툴은 늦게 말하는 사람을 뒤로 배치한다. 셋째, 다른 사람보다 비디오를 늦게 켠다. 화상회의 툴은 늦게 비디오를 켠 사람을 뒤로 배치한다. 넷째, 이름을 'ㅎ'나 'Z'로 시작하도록 바꾼다. 화상회의 툴은 오디오와 비디오를 끈 참가자를 이름을 기준으로 가나다, 또는 ABC로 정렬한다.

그럼 이제 리더의 입장에서 보자. 당신이 리더라면 이제 누가 회의에 늦게 입장했는지, 누가 말을 하지 않는지, 누가 비디오를 늦게 켰는지, 누가 일부러 이름을 바꿨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누가 회의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회의에 적극 참여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알기 어려웠던 사실을 이제 온라인 화상회의에서는 클릭 몇 번으로 다 알 수 있다.
여기서 관점을 한 단계 높여보자. 오프라인 회의에서는 옆자리 몇몇 하고 만 얘기하거나 참가자의 솔직한 의견을 못 듣는 등 물리적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그 한계를 깰 수 있다. PC 사양을 높이거나 보조 PC를 사용하여 참가자가 수백 명이라도 얼굴을 다 보면서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비디오 아래 이름을 보고 친근하게 불러줄 수도 있다. 발표 중에도 채팅으로 질문하거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어렴풋한 생각을 주석 기능으로 그릴 수 있고 익명 툴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누구도 회의에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참가하게 만들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회의를 활성화하는 데에 그렇게도 많은 애를 썼지만 잘 안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오프라인' 그 자체 때문 않을까? 오프라인에서는 그 어떤 경우라 해도 상석과 말석과 위계와 질서가 생길 수밖에 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차이는 공고해진다. 온라인에서는 상석이었다가도 오디오 한번 늦게 켜면 말석이 되고, 말석이었다가도 쉬는 시간에 비디오 하나 먼저 켜면 상석이 된다. 회장이라고 해서 비디오가 더 큰 것도 아니고 신입사원이라고 해서 오디오 소리가 작은 것도 아니다. 온라인에서는 모두가 공평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확산한 온라인 회의로 드디어 수평적인 회의를 할 기회를 얻은 것은 아닐까? 누구도 상석이나 말석에 개의치 않고, 누구나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누구하고라도 진지하게 토론하고, 누구라도 위계와 계급에 쫄지 않고, 누가 정한지도 모르는 불필요한 질서나 절차에 얽매이지 않을 기회가 이번에 온 것이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수평적인 조직과 수평적인 문화를 만드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을까?


김철수 플랜비디자인 전문위원('온택트리더십'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