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독일에 전해오던 전설이다. 파우스트는 실존 인물이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에 걸쳐 실제로 독일에서 살았던 게오르크 파우스트라고 하는 연금술사와 또 다른 전설적 인물인 요하네스 파우스트라는 마술사의 행적이 결부되어 형성된 인물이다. 파우스트 이야기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578년이다. 활자본 슈피스판으로 '닥터 요하네스 파우스트의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터지기 14년전에 나온 책이다.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는 1592년 이 이야기를 소재로 희곡을 썼다. 이 작품은 이후 유럽 최대의 인형극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 인형극을 소재고 18세기 괴테가 파우스트라는 시극을 펴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또 토마스 만의 소설로, 구노의 오페라로 그리고 베를리오즈의 극 음악으로 계속 퍼져 나갓다.
괴테는 이 파우스트에서 발권력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의 도움으로 독일 황제를 방문했을 때 였다. 신곡 속의 독일 황제는 경기 침체에 빠진 나라 경제 걱정를 하고 있었다.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텔레스는 고민하는 황제에게 지폐발행을 제안한다. 땅 속테 보물을 묻어놓고 그것을 담보로 지폐를 무제한 찍으면 경제난이 해소될 것이라고 속삭인다. 황제는 반색을 했다. 파우스트의 말대로 황제의 발권력으로 돈을 마구 찍었다. 돈이 풀려나가면서 경제는 활기를 띠게 된다. 경제회복은 그러나 일 순간이었다. 돈이 너무 많이 공급되면서 물가가 폭등했다. 경제는 더 어려워졌다. 독일 국민들은 도탄에 빠졌다.
파우스트의 이 장면은 무모한 발권력의 한계를 경고하는 괴테의 교훈으로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 괴테의 교훈이 경제학 교과서에 까지 올라가게 된 것은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Bundesbank) 총재를 역임한 옌스 바이드만(Jens Weidmann)때문이다. 2012년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였던 바이드만(Jens Weidmann)은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가 통화량을 늘리려 하자 그를 비판하면서 ‘파우스트’의 교훈을 인용했다. 이후 무모한 통화량 확대 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악마로 비견 됐다. 통화량 확대 주장은 ‘악마의 속삭임’으로 간주됐다. 바이드만 총재는 그 해 9월 1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지폐-국가재정지원-인플레이션: 괴테가 금융정책의 핵심문제를 짚었나?"라는 제목의 제18회 금융역사연구소(IBF) 토론회에서 무차별한 화폐 발행주장에 대해 조목 조목 반박했다. 정치가 발권력에 개입을 하여 화폐 시스템을 붕괴시킨 것은 괴테 이전에 많은 왕국에서 증명됐다. 중앙은행은 그러한 폐해를 막고자하는 노력으로 설립된 것이다. 중앙은행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는 당시 유럽중앙은행(ECB)이 발표한 경기부양책을 '악마의 작품(work of the devil)'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민주당이 제안한 자영업 손실보상법에 한국은행의 국채 직접 매입안이 들어가 있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극복을 위한 손실보상 및 상생에 관한 특별법안’은 자영업자 손실보상 재원을 한은 발권력으로 충당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손실보상금 및 위로금의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한은이 돈을 찍어 이 국채를 직접 인수 하는 방식이다. 중앙은행에서 찍어낸 돈이 곧장 정부 ‘금고’로 이동하는 구조다. 채권 시장 안정을 위해 유통시장에서 국채를 사들이는 한은의 일반적인 공개시장운영 방식과는 크게 다르다. 이 안은 손실보상에 들어가는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한국은행이 바로 인수하는 방식이다. 정부 부채를 중앙은행으로 이전시키는 ‘부채의 화폐화’로 볼수있다. 중앙은행 국채 직매입은 대부분의 나라가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양적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채 등을 유통시장에서 사들였다. 미국과 유로존, 영국, 호주를 비롯한 주요국들도 국채를 유통시장에서만 사들여야 한다고 중앙은행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채 직매입 등 ‘부채의 화폐화’를 법으로도 강력하게 막고 있다.
이들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국채 직 매입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다. 한은법 제75조에 "한국은행은 정부로부터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이 규정은 매우 제한적으로 운영됐다. 한은의 국채 직매입은 1994년 12월~1995년 2월 정부의 양곡관리기금에서 발행한 양곡증권 1조1000억원어치 인수가 유일했다. 한은법 75조는 과거 개발경제 시대 국채시장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에 정부의 자금조달을 돕기 위해 나온 법안이다. 요즈음 처럼 유통시장이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맞지 않는 법이라는 주장이 많다.
세계 각국이 중앙은행의 국채 직매입을 꺼리는 것은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통화량이 쏟아지면 그만큼 통화가치가 훼손되고 동시에 국가신용등급도 끌어내릴 수 있다.한은의 국채 직매입은 시중에 돈을 뿌리는 것과 같아 그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덜어주겠다는 정치권의 취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은행 더러 무한정 돈을 찍어 그 재원을 충당하라는 것은 소탐대실의 우를 범할 수 있다. 정부 국채를 유통시장을 거치지 않고 한국은행이 인수케 하는 것은 정부가 발권기를 갖다 놓고 돈을 찍어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던 악마의 속삭임 지금 한국을 때리고 있다.
[필자 소개] 김대호 박사는 이코노미스트이자 경제평론가이다.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소장과 SBS CNBC 전문위원 고려대 겸임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화 연락처 010-2500-2230) 기자 시 절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전경련 대한상의 무역협회 경총 백악관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의회 등을 출입하면서 예리한 분석과 깊이 있는 해설로 필명을 날렸다. ‘발로 쓰는 경제이야기‘는 지금도 레전드가 되어 있다.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TV 등에서 경제부장 금융부장 해설위원 보도본부장 워싱턴특파원 등을 역임 했다. 고려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미국 미주리대 대학원 등에서 수학 했다, 고려대 경영대학 기업경영연구소 입학처 등에서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중국 인민대 연구위원, 미국무역협회 고문, Foreign Policy 편집위원, 한국도로공사 위험관리위원, KB금융지주 자문위원 등을 두루 거쳤다. 연합뉴스TV와 SBS CNBC 등에서 김박사의 키워드 김대호의 경제읽기 등으로 고정 출연하고 있기도 하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