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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꽃길을 걷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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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꽃길을 걷는 사람들

백승훈 시인이미지 확대보기
백승훈 시인
바야흐로 화란춘성(花爛春盛)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 천지사방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건듯 부는 훈풍에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연록의 새싹들도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어느새 대지를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 바람꽃을 찾아 세정사 계곡에 다녀온 지 일주일 만에 변산바람꽃을 보러 또다시 안양 수리산엘 다녀왔으니 이쯤 되면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난 게 분명하다. 하지만 바람 중에 가장 멋진 바람이 꽃바람이 아니던가. 야생화를 보러 나서는 걸음은 언제라도 경쾌하고 설렌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우리 인간도 진화 기간 중 99.5%를 자연환경에서 보내온 터라 본능적으로 자연에 끌린다. 그래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의 장소와 소리를 선호하고 다른 생물을 보면 호기심이 절로 일게 마련이다. 그 중에도 유독 꽃을 좋아하는 숲 친구들과 자연 속을 함께 걷다 보면 모든 길이 꽃길이 된다. 눈 밝은 친구들은 겨울빛이 채 가시지 않은 낙엽이 수북이 쌓인 숲속에서도 손톱만 한 작은 꽃들을 용하다 싶을 만큼 잘도 찾아낸다. 겨울빛이 채 가시지 않은 숲속에서 꽃을 발견하면 심마니들이 산삼을 발견했을 때처럼 환호성을 지른다. 그때마다 우르르 몰려가 꽃을 둘러싸고 사진을 찍으며 연신 꽃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다 보면 봄은 이미 흐드러지고 꽃 시절이 따로 없지 싶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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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바람꽃'은 미나리아제비과의 우리나라만의 특산식물이다. 1993년 전북대학교 선병윤 교수가 변산에서 발견해 발표함으로써 세상에 존재를 드러냈다. 처음 발견된 곳은 변산이지만 그 외에도 마이산, 선운산, 한라산 등 전국의 산지에 서식하는데 안양 수리산에도 군락지가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 꽃이 예쁘고 앙증맞아 사랑받고 있으나, 개체 수가 적어 보호해야 할 식물 종 중에 하나다. 오래전부터 이 땅에 살아왔으나 이름을 얻은 것은 30년이 채 안 되는 귀한 꽃이다. 산은 변산바람꽃 외에도 많은 꽃을 보여주며 우리를 유혹한다. 괭이눈, 꿩의 바람꽃, 너도 바람꽃, 분홍노루귀, 흰 노루귀, 현호색, 올괴불나무 꽃이 우리의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등산가들과 달리 꽃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마냥 여유롭고 더디기만 하다.

봄꽃들을 보고 있으면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의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가 떠오른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중 '백제본기 온조왕' 편에 등장하는 구절인데 이른 봄 산에서 만나는 야생화들이 꼭 그렇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제일 먼저 세상에 봄빛을 전하는 야생화들은 아주 작은 꽃이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고 꽃 한 송이로도 온 산에 봄기운을 불어넣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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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꽃 필 때가 안 되었지만 반칠환 시인은 '노랑제비꽃'이란 시에 이렇게 적었다.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다"라고.

산에서 만난 노 사진작가는 꽃을 찍는 일이 정년퇴직 후의 자신의 삶을 활기차고, 보람되게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산으로, 들로 꽃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정리하여 카페에 올리고, 달리는 댓글에 답을 하다 보면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란다고 했다. 동행한 숲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려 휴대폰으로 촬영을 부탁했더니 성능 좋은 자신의 카메라로 찍어 보내 주셨다. 손수 찍은 꽃 사진 몇 장도 함께. 꽃을 찾아 숲속을 헤매다 보면 모든 길이 꽃길이 되는 것처럼 비록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지만 피어나는 꽃을 보며 우리 모두 희망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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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