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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숲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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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숲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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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삶을 영위해 나간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밥을 먹는 일과 같은 것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그 당연하던 만남조차 어려워진 요즘이다. 아무리 마스크를 꽁꽁 여미고 외출을 해도 사람들 가까이 다가가기 두렵고 반가운 친구를 만나도 선뜻 손잡지 못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는 사람들 간의 거리를 강제로 벌려 놓은 대신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거리를 떠나 숲속 오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자연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는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불안이나 두려움을 자연에서 위로받고 보상받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음이 답답하거나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싶을 때 여행을 생각한다. 여행을 하면 늘 보았던 익숙한 풍경이 아닌 낯선 자연과 풍물이 전해주는 새로운 색감에서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일상의 자장이 미치지 않는 낯선 곳에 가면 절로 기분전환이 되는 이유다. 봄은 변화무쌍하고 분주한 계절이다. 일부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자고 나면 새로운 꽃이 피어나고, 초목들은 어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마치 기차를 타고 가며 바라보는 창밖 풍경처럼 순간마다 새로운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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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처럼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행을 떠나기도 쉽지 않을 땐 조용히 자연을 관조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향락적 생활, 명예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생활, 부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적 생활로부터 '관조적 생활'을 인간 최고의 이상적인 행복한 생활로 꼽았다.

'곰돌이 푸우'는 이런 말도 했다. "배움에 반드시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연을 한 번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자연은 아무 말을 하지 않지만, 분명 쉼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나요?"

관조(觀照)의 사전적 의미는 대상을 논리적 사변에 의하지 않고 직접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사전적 의미는 제쳐두고라도 자연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일깨워준다. 불꽃놀이라도 하듯 동시다발로 터져 오르는 꽃 폭죽에 환호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바람에 쓸리는 벚꽃 이파리에 잠시 눈길 주는 사이, 돋아난 잎들은 어느새 초록으로 나무를 에워싼다. 꽃들이 난분분할 때에도 침묵하던 은행나무 가로수들도 손톱만 한 새 잎이 돋아나는가 싶더니 아침 햇살을 받은 연록의 이파리들이 꽃보다 더 환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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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를 가장 매료시키는 것은 숲의 색감이다. 아파트 단지나 소공원의 나무들의 변화를 살피는 것도 유쾌하지만 겨울을 견딘 숲속의 나무들이 저마다 피어 올린 이파리들로 숲 전체의 색깔을 시시각각 바꾸어 가는 채색과정을 멀리서 지켜보는 일은 가히 감동적이다. 마치 수채화물감을 풀어놓은 듯 처음엔 초록보다 노랑이 더 많은 연두로 시작하여 조금씩 초록이 짙어져 마침내 색에 색을 더한 유화를 닮아가는 숲의 변화를 바라보다 보면 숲의 조용한 혁명사를 읽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숲이 지닌 자연의 색채는 모성과 닮아 있다. 늘 곁에 있으면서 나의 눈길과 마음을 묵묵히 받아줄 뿐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마음이 답답하고 일상이 따분하게 느껴진다면 가까운 산을 찾아 숲을 바라보라.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숲의 채색작업을 조용히 관조할 것을 강권한다. 그리하면 따분한 당신의 일상 속으로 한 줄기 싱그러운 초록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틀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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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