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면서 피해규모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잇따라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비웃듯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의 수법은 진화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7000억 원으로 전년(6398억 원)과 비교해 9.4%(602억 원) 늘었다. 2017년(2470억 원)과 비교하면 3년 사이 무려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인터넷은행의 특성상 계좌 개설 절차가 간단하고, 최근 암호화폐 투자를 위해 인터넷은행 계좌를 여는 사람이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유독 인터넷은행을 통한 피해 사례가 급증한 것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암호화폐 열풍에 힘입어 인터넷은행 계좌 수 자체가 폭발하듯 늘어난 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말 기준 누적 고객 수 219만 명을 보유한 케이뱅크는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와 입출금 계좌 연계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난달 고객 수가 537만 명으로 불어났다. 카카오뱅크는 지난달까지 1444만 명의 고객이 계좌를 개설했다.
최근에는 가족이나 은행을 사칭한 메시지를 뿌려 피해자가 스스로 개인정보를 보내게 한 뒤, 비대면 계좌를 열어 피해자의 다른 계좌 잔고와 대출금을 빼가는 수법이 크게 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관련 대책을 연일 쏟아내면서도 정작 솜방망이 수준의 처발을 해 빈축을 사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사기로 검거된 3만 9852명 중 구속된 이들은 2.6%(1025명)에 불과했다.
보이스피싱 처벌 수위를 높이지 못하는 것은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잠을 자는 탓이 크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9건 발의됐지만 모두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면서 계류돼 있다.
법행 수법이 나날이 교묘해지는 보이스피싱에 전 재산을 잃고 극심한 자책감 속에서 극단의 선택을 하는 데도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은 강건너 불 구경하듯 하고 있는 셈이다.
당장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유사한 징벌적 배상제도라도 도입해서 보이스피싱을 막고 피해를 구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도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ohee194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