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고위 공무원에게 전해들은 얘기다. 그러니까 ‘20세기’에 있었던 일이다.
어떤 신혼부부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다. 당시에는 평범한 신혼부부의 경우 택시를 대절해서 제주도를 관광하는 게 신혼여행이었다.
이 부부도 그랬다. 택시를 타고 서귀포 쪽을 둘러봤다.
신혼부부는 관광 도중, 택시 운전기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운전기사의 소개로 바다가 보이는 땅을 약간 구입했다.
땅값은 비싸지 않았다. 신혼여행 비용을 몽땅 털어서 치를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신혼여행은 그것으로 포기해야 했다.
부부는 그 땅을 잊고 살았다. 그렇지만 그 땅은 20년 가까이 지나는 사이에 대단한 돈으로 ‘변신’해 있었다. 개발붐이 땅값을 부채질까지 해줬다.
‘신랑’은 덕분에 ‘조기 명예퇴직’을 단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랑’은 ‘신부’와 함께 ‘퇴직기념여행’으로 제주도를 찾아 사놓은 땅을 둘러보며 신혼 당시를 회상할 수 있었다.
부부는 땅을 소개해준 운전기사도 수배해서 만날 수 있었다. 이미 호호백발이 된 운전기사에게 적지 않은 ‘선물’도 했다고 한다.
얼마 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73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실적으로 예상하는 근무 연령은 평균 53.8세라고 했다. 이들의 ‘희망’ 정년은 평균 60.1세였다. 월급쟁이들은 ‘희망’만큼 버티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파이어족’을 꿈꾸는 월급쟁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젊었을 때 노후자금을 확보해서 40대가 되기 전에 일찌감치 은퇴하자는 파이어족이다.
지난 3월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20~30대 성인 1117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57%가 ‘파이어족이 될 생각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었다. 현재 파이어족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41%가 ‘있다’고 했다. 조기 은퇴를 위한 목표 자산은 평균 4억3000만 원, 희망하는 은퇴 연령은 39세였다.
그러다 보니, 서두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영끌’을 해서 집이나 주식을 사고 가상화폐에 투자해서 목돈을 ‘빨리빨리’ 잡자는 것이다.
하지만 성급한 투자는 ‘무리수’를 둘 수 있다. ‘신혼부부’는 얼마 안 되는 돈을 20년이나 잠겨둔 덕분에 ‘대박’을 잡을 수 있었다.
집값, 땅값 등 모든 게 ‘엄청’ 치솟은 ‘21세기’에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투자를 멀리 내다보고 할 필요는 지금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아예 결혼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의 ‘2020년 청소년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에 동의하는 청소년이 39.1%에 불과했다. 2017년 조사 때의 51%보다 11.9%포인트나 급락한 것이다. ‘결혼을 하더라도 반드시 아이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응답도 60.3%로 14.2%가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혼여행 비용을 포기할 기회도 그만큼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belly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