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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판교의 '고인 물'…군대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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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판교의 '고인 물'…군대와 닮았다

여용준 IT과학부 차장이미지 확대보기
여용준 IT과학부 차장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을 좋아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애정이 있는 사람이나 사물, 콘텐츠가 아니라면 늘 보던 것에 금방 질리는 편이다. 게임을 하더라도 '뉴비(신규유저)'가 계속 들어와서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하고 지지하는 정당에서도 새로운 얼굴이 계속 등장해야 속이 풀린다.

그저 새로운 것이 보고 싶어서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을 가끔 쓰지만, 이 말은 때로 대단히 진지하게 써야 할 때가 있다. '고인 물'이 권력화되면서 불가피한 피해를 낳게 되는 경우다.
네이버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주된 이유다. 그 직원의 죽음을 계기로 '판교'로 대표되는 IT업계 '고인 물'의 만행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앞서 공군 여군 부사관이 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 사건 이후 군 내에서는 여군에 대한 성범죄 사례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성범죄'와 '직장 내 괴롭힘'을 동일선상에 놓느냐에 이견이 생길 수 있지만 '인격적 살인'이라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한다.
군대 조직은 '고인 물'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방산비리나 위계질서에 의한 갑질이 뿌리 깊게 박힌 곳으로 사실상 자정 기능을 상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군복무를 마친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지향했던 IT업계가 가장 수직적인 조직인 군대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할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고인 물'은 썩는다. 썩은 물은 조직 전체를 썩게 만든다. 그렇다면 '고인 물'을 흘려보내고 물이 순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야 한다. 군대와 '판교'는 비슷한 시험에 봉착했다. 그들이 어떻게 고인 물을 걷어내고 물길을 열지 지켜봐야겠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