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반 타의반으로 만남이 줄어들다 보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집안에서 혼자 있을 땐 주로 독서를 하고, 책을 보는 것이 지루하다 싶으면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한다. 창밖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을 읽다 보면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도 있다. 한차례 소나기가 퍼붓고 간 오후, 도봉산 쪽으로 몰려가는 비구름을 바라보며 옛 시를 읽는 재미가 쏠솔하다.
바람이 사립 닫자 제비새끼 놀라는데 風扉自閉燕雛驚 (풍비자폐연추경)
소낙비 빗기더니 골 어귀에 몰려가고 急雨斜來谷口去 (급우사래곡구거)
푸른 연잎 삼만 자루에 흩어져 쏟아지니 散入靑荷三萬柄 (산입청하삼만병)
떠들썩하니 온통 갑옷 군대 소리로다. 嗷嘈盡作鐵軍聲 (오조진작철군성)
작가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한원(漢源) 노긍(盧兢·1738-1790)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고도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고 곤궁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는 구김살이 없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퍼부으며 골목 안을 휘젓고 연꽃 방죽을 건너가는 풍경이 요즘의 집중호우를 묘사한 듯 눈에 선하다. 푸른 연잎에 쏟아지는 소나기를 갑옷 입은 군대와 푸른 방패 사이의 일대 격전이 벌어지는 전쟁터로 표현한 시인의 상상력이 사뭇 놀랍기만 하다.
한줄기 소나기 긋고 간 뒤 천변을 산책하다 먹이 사냥을 하는 쇠백로 한 마리를 만났다. 왜가리과에 속하는 쇠백로는 백로 중 몸집이 작은 편이다. 깃은 흰색이고 윗목에 두 가닥의 길고 흰 장식깃이 자라며 부리와 다리는 검고 발가락은 노랗다. 가까이 다가가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물고기를 잡는 일에만 열중이다. 재밌는 것은 그냥 수면을 노려보다가 지나가는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천렵을 할 때 수초 사이를 발로 헤집어 물고기를 몰듯 한 쪽 발로 돌 틈을 쑤셔 물고기를 나오게 한 다음 부리로 잽싸게 낚아채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매번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번번이 허탕을 치기 일쑤여도 쇠백로는 물고기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중랑천변 쥐방울덩굴 군락지에는 요즘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들이 화려한 나비로의 변태를 꿈꾸며 열심히 쥐방울 덩굴 이파리를 갉아 먹고 있다. 가늘고 긴 꼬리에 붉은 띠와 푸른 점이 특징인 호랑나비과에 속하는 꼬리명주나비는 20여 년 전만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나비였지만 도시개발 등으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멸종위기 우려종으로 지정될 만큼 개체 수가 많이 줄었다. 구청에서 서식지 복원을 위해 쥐방울덩굴 군락지를 조성하면서 꼬리명주나비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모두가 힘든 시절이다.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기보다 한마음으로 이 힘든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 번번이 허탕을 치면서도 물고기 사냥을 멈추지 않는 백로처럼, 화려한 꼬리명주나비를 보기 위해 자신의 잎을 내어주는 쥐방울덩굴처럼 힘들지만 함께 견뎌야한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show must go on)는 퀸의 노랫말처럼 우리의 삶은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