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런 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친 심신에 위로를 받는다. ‘나무의 치유력’의 저자이자 프랑스의 숲 치료 전문가인 패트리스 부샤르동은 “나무는 인간에 의해 훼손되거나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의 일부”라며 “나무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새롭게 갖고 나무를 가까이 함으로써 육체와 정신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모든 나무는 특유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나무의 거친 수피에 등을 대고 앉으면 나무에서 전해오는 미세한 에너지의 변화를 통해 호흡의 리듬을 바꾸고 고통과 통증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리는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로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이 삼면을 휘감아 돌고 다른 한쪽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배를 타지 않고서는 드나들 수 없는 오지 중의 오지이다. 그래서 청령포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강을 건너야 한다.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이곳에 유배된 것은 그의 나이 열여덟 살 때인 1457년 6월이었다. 병약한 아버지 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어린 나이에 임금 자리에 오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권력을 찬탈당하고, 이름뿐인 상왕으로 자리를 지키다가 나중에는 아예 죄인이 되어 이곳으로 유배됐다. 지금의 청령포는 우리나라 어느 지역보다 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닌 명승지에 분명하지만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어린 임금 단종에게는 다시는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절해고도에 버금가는 유배지였으리라.
유배 온 단종의 심정을 헤아리며 비감에 젖어 강을 건넌다. 강변의 자갈밭을 지나 솔숲으로 들어서 단종의 거처였던 단종어소의 담을 넘어 허리를 굽힌 ‘충절의 소나무’를 둘러본 뒤, 관음송을 찾아 발길을 재촉했다. 관음송은 노산대를 향하는 솔밭 중앙에 우뚝 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은 키가 30m를 넘는 우리나라에서 키가 가장 큰 소나무다. 여느 소나무들과는 달리 줄기가 둘로 나뉘어 한 줄기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반면 다른 한 줄기는 서쪽을 향해 비스듬히 뻗어 있다. 단종이 그 갈라진 자리에 걸터앉아 유배지의 고독과 슬픔을 삭였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줄기는 하늘을 향해 풀어내는 단종의 한을 따라 솟아난 것이고 다른 한 줄기는 그토록 갈망하던 한양 땅을 향해 자라난 것이라고 한다. 그늘에서는 광합성을 할 수 없어 가지도 잎도 내지 않는 침엽수 특유의 생존방식임에도 사람들은 상상력을 보태어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왕좌에서 쫓겨난 비운의 왕이 자신의 수피에 등을 기대고 울분과 슬픔을 달래던 소나무는 수백 년의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푸르다. 한 많은 어린 임금을 향해 치유의 에너지를 뿜어내던 관음송은 수백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청령포를 찾는 사람들에게 신령스런 에너지를 전해주고 있다. 지금은 보호수로 철제 난간이 설치되어 있긴 하나 청령포의 솔숲에 들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친 심신을 치유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어린 조카 단종을 쫓아내고 왕좌에 오른 세조가 속리산을 찾아가던 길에 스스로 가지를 들어 주어 벼슬을 내렸다는 정이품송 역시 소나무다. 나무는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치유의 에너지를 건네는 것이다. 가을 들머리,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영월 청령포로 관음송을 찾아 길을 떠나길 강권한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