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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남양’ 홍 회장과 ‘한샘’ 조 회장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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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남양’ 홍 회장과 ‘한샘’ 조 회장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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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운 유통경제부장·부국장

2년 여 째 코로나19라는 '세기적 전염병’ 속에서도 입추(立秋), 말복(末伏), 처서(處暑)를 지나 본격 가을이자 수확의 계절이 시작되는 백로(白露)와 추분(秋分)이 있는 9월이 시작됐다.

볏논의 나락은 늦어도 백로가 되기 전에 여물어야 하며, 벼는 늦어도 백로 전에 패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서리가 내리면 찬 바람이 불어 벼의 수확량이 줄며, 백로가 지나서 여문 나락은 결실하기 어렵다. 밤이 길어진다는 추분점(秋分點)에 이르러면 가을에서 겨울 초입이 시작된다며 인체는 몸부터 신호를 준다. 우리 선조들은 계절의 순환을 따져 24절기로 한 해를 시작하며 끝을 맺고, 또 다음 해를 준비했다. ‘다 때가 있다’는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삶을 준비하는, 통철하지만 순박한 삶의 지혜를 보인 것이다.

1964년과 1970년 창립한 유통업계 장수기업인 남양유업과 한샘은 올 들어 경영권 승계 대신 인수합병(M&A)을 통해 ‘업력 잇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지난한 과정은 정반대다.

매일유업과 함께 유(乳)업계 맞수로 통했던 남양유업은 대리점주 갑질, 과장광고, 상대 회사 비방 댓글 등 등의 일탈로 지탄을 받아왔다. 올 초엔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죽인다”는 허무한 홍보로 유통업계 대표적 ‘트러블 메이커’로 낙인찍혔다. 결국 지난 5월 홍원식 회장은 그래도 오너(리더)의 결단을 느끼게 할 약속을 국민 앞에 했다. 홍 회장은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제가 회사의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구시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비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주지 않겠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매각 바로 전날 회삿돈 유용 의혹으로 보직 해임된 장남의 복직과 또 차남을 임원으로 승진시킨 후 한앤컴퍼니와 주식매매 계약을 맺었던 홍 회장은 그 이후 여러 핑계를 대며 뜸을 들이다 뜬금없이 ‘회사를 당장은 팔지는 않겠다’며 대국민 약속을 결국은 찢어버렸다. 그는 한앤컴퍼니와 분쟁이 정리되는 대로 매각 절차를 다시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세간엔 ‘남양이 또, 남양하네’라는 비웃음뿐이다.

대리점주 갑질 논란과 사내 성추행 사건으로 한때 손가락질 받던 가구업계 1위 한샘은 7월 최대주주 조창걸 명예회장의 지분(15.45%)과 자녀 등 특수관계인 7인이 보유한 주식(30.21%)을 사모펀드 IMM PF에 경영권 양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조 회장은 지난 2012년 자신이 설립한 ‘태재(泰齋)재단’에 한샘 주식 보유지분 전량 출연으로 장학사업과 학술지원사업 등을 통해 리더를 육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2015년 초당파‧초국가적 연구를 통해 미래의 세계질서를 전망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모색한다는 취지의 ‘여시재(與時齋, 시대와 함께하는 집)’라는 공익재단을 설립 후 국가미래전략을 위한 싱크탱크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매각 과정의 여러 추측도 있겠지만 1994년부터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소유와 경영 분리를 정착시킨 한샘은 예정대로 하반기 본 계약을 체결할 경우 한샘의 대주주는 ‘IMM PE’로 바뀐다. 하지만 조 회장이 평소 밝힌 대주주 재산의 사회 환원을 통해 미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은 속도를 낼 것이다.

가을은 흔히 결실의 계절이자, 대자연의 흐름앞에 겸손해지는 자아성찰의 시기이기도 하다. 땀방울 맺힌 과실 하나에도 우주의 감사함을 느끼며,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도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봄을 잉태하는 ‘생명의 낙엽’을 기대한다.

50여 년 동안 회사를 성장시키며 국민의 건강과 생활이 좀 더 편리하도록 노력해 온 80대 조창걸 명예회장(1939년 생)과 70대 홍원식 회장(1950년 생)의 올 가을은 새삼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동양의 현자(賢者)로 추앙받는 공자는 만년에 자신의 위정편(爲政篇)에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회고했다. 한국의 유업계와 가구업계에 한 횟을 그은 두 CEO가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뒷모습은 더 아름다운 경영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최영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ou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