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선물 등이 4가지 변수들이 한꺼번에 만기를 맞아 주가르 흔드는날을 뉴욕증시에서는 흔히 네 마녀의 날이라고 한다. 네 마녀의 날이 되면 12.12 경제 쿠테타가 생각난다. 12.12 경제 쿠테타는 네 마녀보다 더 무서운 정부 마녀로 불린다.
신군부 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 까지 체포하여 그로 하여금 대통령에게 설득하도록 한다. 마침내 대통령 최규하는 12월13일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했다.
그리고 마침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실시하여 국가 권력을 탈취한다. 그 다음날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된다. 우리 역사의 큰 변곡점이었던 이른 바 12.12 사태는 1979년 12월12일 한 밤중에 벌어졌다. 그때 집권한 전두환과 노태우는 몇 달 전 세상을 떴다.
세월이 흘러 그로부터 또 10년이 지난 1989년 12월12일 이번에는 경제계에서 12.12사태가 터졌다. 12.12 군부 쿠데타 10주년이기도했던 그날 노태우 정부는 이른바 증시안정화 대책 이란 것을 발표했다.
장소는 서울 남대문에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 이규성 재무부장관이 기자회견을 했다. 이규성장관의 증시안정화 대책에는 ▲한국은행 발권력 동원 통화증발 ▲투신사에 대한 은행의 자금 무제한 공급 ▲ 투신의 주식매입 ▲시가발행 할인율 확대 등의 슈퍼 메가톤급 증시 부양조치가 담겨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은행 금고를 활짝 열어 증시가 안정될 때까지 주식매입자금을 무제한 지원하는 것이다. 그래도 부족하면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해 통화량을 무한정 찍어내겠다는 것이었다.
이 발표 이후 은행들은 실제로 2조7000억 원을 3개 투신사에 주식 매수자금으로 빌려주었다. 당시 2조 7000억원은 그 때 우리나라 모든 상장사 들의 시가총액 합계액의 2.8%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투신사들은 그 돈으로 주식을 닥치는 대로 매입하기 시작했다.
투신사들이 주식을 대량으로 사 모으자 주가는 바로 오르기 시작했다. 정부의 증시안정화대책이 효력을 보는 듯했다. 12.12대책 이후 사흘 동안 코스피가 100포인트 올랐다. 약발은 그때까지였다. 영업일 기준으로 나흘째 되는 날부터 오히려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부양책을 틈타 오히려 손을 털고 빠져나간 투자자들이 많았다.
이규성 재무장관은 여기에 또 4조원 규모의 ‘증권시장 안정기금’을 추가로 투입했으나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증시의 둑을 지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코스피는 그로부터 2년 반 동안 계속 추락했다. 1992년 8월에는 역사적 저점인 456포인트까지 내려앉았다. 은행에서 돈을빌려 주식을 산 투신사들은 모두 파산했다.
대다수의 경제전문가들은 경제의 원리와 시장메커니즘에 반하는 무리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헌법을 유린한 하나회의 12.12 군사쿠데타와 너무도 닮았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지금도 당시의 증시안정화 대책을 ‘증권판 12.12사태’라고 부르고 있다.
무리한 정책의 대가는 실로 컸다. 그 부작용은 단군 이래 최대의 환란이라는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원인으로까지 작용했다. 정부가 잘못 개입할 때 나라가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교훈이다.
요즘도 우리 정치권에서는 해괴한 경제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말이 수레를 끄는 것이 아니라 수레가 말을 끌고 간다는 소득주도성장에서 부터 아파트와 집값을 거꾸로 폭등시킨 수십 차례의 부동산 안정화 대책, 종부세 세 세금폭탄 그리고 나라곳간 털어 마구 퍼주는 현금살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황당한 정책들이 이어지고 있다. 12.12 경제 쿠데타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시장실패는 정부의 개입으로 수정할 수 있다. 정부실패는 과연 누가 수습해 줄 것인가, 경제쿠데타로 인한 손실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