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황당한 사건을 들라면 단연 1997년에 터진 IMF 외환위기일 것이다. 그즈음 한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은 세계가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 IMF 사태가 터지기 직전에는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에도 가입했었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해가던 그야말로 세계 경제의 모범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국가부도를 맞았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거시경제지표가 매우 양호했던 한국이 돌연 IMF 사태에 빠진 것은 한마디로 외환관리의 실패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면서 국가부도라는 단국 이래 최악의 참사를 맞은 것이다.
1997년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느닷없이 39억 달러로 떨어졌다. 태국 등 동남아국가들에 빌려준 자금이 디폴트로 제때 회수되지 않으면서 생긴 사건이었다. 그 바람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했다. 모든 나라가 한국에 등을 돌렸다. 달러 부족으로 석유 한 방울도 제대로 사올 수 없는 국가부도를 맞은 것이다. 다급해진 김영삼 정부는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IMF로 부터 동냥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살벌한 구조조정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겼었다. 당시의 상처는 아직도 한국경제의 곳곳에 남아있다. 외환관리의 실패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한국과 미국은 2020년 3월 19일 코로나19 여파로 외환시장이 크게 흔들리자 그 방어책으로 600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스와프 계약기간은 그해 9월까지였다. 이후 두 차례 연장되어 올 연말 종료된다. 한국은행은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12월31일로 끝내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스스로 끝내는 것이라면 정책오판일 수 있다. 미국이 우리의 연장 요청을 거부한 것이라면 경제외교의 실패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이 종료되더라도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외환보유액(2021년 11월말) 잔고는 4639억 달러이다. 지금 당장은 한은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 펜데믹은 여전히 우리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 연준 FOMC가 실제로 금리인상에 착수하면 신흥국의 달러가 한꺼번에 미국으로 역류할 수 있다. 이른바 긴축발작이라고는 테이프 탠트럼의 경고등이 도처에서 울리고 있다.
미국이 빠지고 나면 우리나라의 통화스와프 규모는 사전 한도가 설정되지 않은 캐나다와의 계약을 제외할 때 1382억 달러로 줄어든다. 유사시 방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가장 공신력이 높은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가 빠져있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우리가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나라는 스위스 중국 호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UAE 그리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M) 소속 국가들이다.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들 국가의 신용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한 마디로 앙코 빠진 찐빵이다. 국제 금융질서는 좋던 싫던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후 세계를 사실상 지배해 오고 있는 브레튼우즈와 IMF 체제의 엄중한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연장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 당장 눈 앞에 태풍이 보이지 않는다고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연장하지 않는 것은 한국은행과 이주열 총재의 큰 실수가 될 수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