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겨울 숲을 보러 가지 않을래?”
그렇다고 만일 눈이 내리지 않은 채 추위가 이어진다면 땅은 꽝꽝 얼어붙고 말 것이다. 그리되면 땅속의 씨앗들, 구근 같은 생명의 저장고들은 모두 얼어 죽어 새봄을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눈이 내려 대지를 푸근히 덮어주어야만 땅은 길고 따뜻한 털로 덮인 북극곰처럼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겨울을 두고 아무것도 길러내지 못하는 불임의 계절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겨울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계절이다. 여름의 무성한 초록에 가려 보이지 않던 나무들이 벌거벗은 채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벌레들은 알을 슬어놓고 죽거나 고치를 짓고 그 속에 들어가 잠든다. 만물을 흰 시트 자락으로 덮고 그 밑에서 생명이 죽음에서 부활을 잉태하는 시기가 다름 아닌 겨울인 셈이다.
눈이 내린 숲은 빛바랜 낙엽들과 벌거벗은 나목들이 묵상에 잠긴 겨울 숲의 쓸쓸한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하늘을 비질하던 빈 가지마다 하얀 눈꽃을 피워 달고 선 나무들의 변신도 놀랍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며 눈가루를 뿌려댈 때면 마치 짓궂은 장난꾸러기 아이 같다. 그런가 하면 적막도 길을 멈춘 듯한 차고 정한 눈 내린 숲의 정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눈이 내리면 익숙하던 길도 서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눈이 덮인 길은 자칫하면 미끄러져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눈 내린 아침이 세상의 첫 아침이라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눈 내린 세상의 길은 모두 새 길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면 처음이어서 낯설고, 낯설어서 새로운 눈길을 걸어볼 일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눈 내린 겨울 숲길을 걸어볼 일이다. 눈 내린 겨울 숲에서 온전히 시간 속에 자신을 맡기고 눈길을 걸으며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했던 빛과 향기와 음률을 생각해볼 일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