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새무엘슨은 정통 자유주의의 시카고학파와 유효수요창출과 정부개입을 역설한 케인즈 경제학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오늘날 주류로 인정받고 있는 ‘신고전파종합’ 이론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새무엘슨은 통화주의의 본산으로 불리는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이수했다. 박사학위는 케인지안의 중심인 하버드에서 취득했다. 이후 MIT 교수로 재직하면서 현시 선호이론과 효율적 시장가설 그리고 헥셔-올린 모델 등을 개발했다. 미시와 거시는 물론 재정학과 후생경제학에도 큰 자취를 남겼다. 다양한 사상과 이론을 두루 통합한 만큼 상호간의 조화와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폴리시믹스라는 정책조합이 특히 중요해진 배경이다.
폴리시믹스라고 해서 모든 정책이 같아야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서로 다른 정책수단과 상이한 효과발생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만큼 그 고유한 특성을 잘 살리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책방향에 있어서만큼은 같은 철학과 동일한 목표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폴리시믹스의 기본 정신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기준금리를 또 올렸다. 날로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통화량을 흡수해야한다는 논리이다. 우리나라의 2021년 연평균 CPI 소비자물가지수는 2.5% 올랐다. 억제 목표치인 2.0%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인플레 속도는 올 들어 더 가속되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경기를 살린답시고 돈을 너무 많이 푼 부작용이 물가폭등의 인플레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통화긴축의 고비를 죄고 있다. 유동성을 줄이지 않고서는 1970년대와 같은 장기적 악성 인플레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데 전 세계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미국 연준은 테이퍼링을 올 3월까지 끝내고 곧바로 금리인상과 대차대조표 축소라는 양적긴축에도 나서겠다고 천명한 상태이다.
한국은행 금통위가 코로나 펜데믹 이후 3번째 기준금리를 올리던 그날 그 시각 홍남기 부총리는 14조원 추경을 발표했다. 새해 예산안 집행을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일찍이 전례가 없는 일이다. 홍 부총리도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현 단계에서 추경을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거듭 밝혀왔다. 홍 부총리의 추경 불가론은 정치권의 압박 속에 시나브로 홍백기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추경의 선 기능도 물론 적지 않다. 코로나 방역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에게는 추경으로 마련한 재난지원금이 가뭄의 단비 일 수 있다. 추경을 통한 유동성의 살포는 내수 소비를 진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정책의 엇박자이다.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는 방법으로 유동성을 줄이고 있는데 기획재정부는 인플레에 물가에 기름을 붓을 수도 있는 유통성 살포의 추경을 내놓았다. 그것도 두 기관이 한날한시에 발표했다. 국민들은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 것인지 혼란하기만 하다. 혼란을 넘어 어찔어찔 현기증을 주체하기 어렵다.
기획재정부가 추경으로 돈을 풀고 그 풀린 돈을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으로 환수한다면 총량 면에서는 정책적 효과가 중립일 수 있다. 문제는 추경 재원조달과 금리인상의 와중에 자본시장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뉴욕증시와 런던증시의 국제 투자은행들은 벌써부터 한국 증시에서 돈을 빼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 엇박자는 국제금융시장에서 또 하나의 코리아디스카운트가 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