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실종이군. 세 번짼가?”
몇 년 전 다녔던 작은 회사. 그곳에선 기이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벌어졌었다. 채용된 신입사원마다 얼마 가지 않아 실종된다는 거였다. 한 달, 일주일, 그리고 하루. 사라지는 기간도 점점 짧아졌다. 첫 실종자였던 신입사원이 돌연 무단결근을 했을 땐, 어떤 사달이 난 게 아닐까 걱정했더랬다. 애태우며 며칠간 집요하게 연락했더니, 직원 어머니께 답장이 왔다. ‘우리 딸 몸이 좋지 않아 회사 그만둡니다.’ 당혹스러웠다. 실종되기 전날 퇴근 시간. 그녀가 내게 보여준 건강한 미소는 무엇이란 말인가.
팀장은 ‘팀원’이 아닌 ‘팀원들’에게 화를 냈다. 대상이 명확하지 않았던 이유. 그건 신입사원에게 정해진 사수가 없던 탓이다. 매번 ‘내일 신입사원 오면 다들 잘 챙겨줘’란 말로 뭉뚱그렸다. 당시 팀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곳이었는데, 팀원마다 직무가 달랐다. 매번 채용에 실패한 신입사원 역시 정해진 직무가 있었다. 그리고 팀에는 해당 직무를 담당 중인 직원도 존재했다. 그 직원이 사수 역할을 맡아야 했지만, 출장과 외근이 잦았다. 현장에 무방비상태의 신입사원을 데려가기도 쉽지 않았다. 인력은 부족한데 인력이 채워지지 않는 상황. 매번 가장 큰 짐을 지고 있는 것 역시 그 팀원이었다.
팀장은 책임을 전가할 목표물이 없단 걸 깨닫자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채용공고 방식을 트집 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에 한 번 더 촌철살인 당했다.
“여기가 대기업도 아니고…… 신입사원한테 많은 요건을 바라니까 그렇죠. 들어오는 이력서가 없어서, 제가 구직자 이력서를 몇 개나 열람한 줄 아세요?”
사실 우린 알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연쇄적으로 벌어졌는지. 작은 회사라서? 초봉이 빈약해서? 사수가 없어서? 신입사원에게 원하는 게 많아서? 이것도 원인이었겠지.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조직의 인상’이었다. 누가 봐도 눈앞에 놓인 일들을 해치우는 데 급급한 분위기. 개인 성장으로 이어질 포트폴리오를 쌓기 어려운 업무. 이뿐인가. ‘소통’도 원활하지 않았다. 리더는 사무실에서는 까라면 까고, 회식에선 술 한 잔 기울이며 진솔해지길 바랐다. 글쎄…… 그건 ‘소통’이 아닌 ‘쇼;통’이 아닐까?
눈치껏 배우고 알아서 이해하는 시절도 있었다만, 지금은 한 회사에 진득하게 머물며 더딘 성장을 해나가는 게 미덕이라 여기는 이들이 적다. 사람은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만나봐야 알고, 결혼은 사계절은 지내봐야 결심할 수 있단 말이 아직 유효한지는 모르겠으나, 회사는 다르다. 기업 밖에서도 기업 안 사정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는 요즘. 주니어 연차 직원의 이탈로 근심하는 회사가 늘어가는 현재. 이젠 ‘회사가 바라는 인재상’에 골몰할 게 아니라 ‘인재가 원하는 회사상’에 주목할 때가 아닐까.
여전히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이 무관하다고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아직 듣지 못하고 있다. 괜찮다 믿고 싶은 조직을 파고드는 균열음을 말이다.
이유림 플랜비디자인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