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도, 기다리지 않아도 분명 봄은 올 것이다. 그리고 여느 해처럼 천지간에 봄빛을 흐드러지게 풀어놓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기다림의 시간이 지루하기 때문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들떠 있는 탓이리라.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봄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썼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아직도 나는 젊어서 마음이 바람을 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다림이 지루할 때는 걷는 게 상책이다. 촉수 잘린 개미처럼 제자리를 맴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나는 정처 없이 걷는다. 때로는 북한산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중랑천변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 천변을 따라 걷기도 한다. 둘레길을 걸으며 나무 사이로 보이는 마을 풍경을 보거나 천변을 걸으며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하면서. 혼자 걷다 보면 심심하기도,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그 쓸쓸함이 때론 속으로 깊어지고 넓어지게 한다. 걷다 보면 어느덧 마음속 조바심은 사라지고 겨우내 무뎌진 감각들이 살아나서 하늘과 땅, 물과 나무와 어우러져 나 자신도 자연과 동화되어 그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이 일기도 한다.
천천히 걸으며 나무들의 겨울눈을 살피거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봄을 기다리는 로제트 식물들의 안부를 챙기다 보면 이미 겨울 속에 봄이 들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흔히 봄을 사계절의 시작이라고 말하지만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겨울이라는 잉태의 계절이 있기에 비로소 봄은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고진감래라는 말도 있듯이 추운 겨울을 견딘 자만이 찬란한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매화는 추위가 매울수록 향기가 짙어진다고 한다. 자신의 봄이 찬란하지 않다면 혹독한 겨울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봄이 온다고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코로나로 신음하는 중이고, 마스크를 벗고 맘껏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일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하여도 저만치에 봄이 오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네루다는 '꽃은 스스로 맑게 준비해서 꽃을 피운다'고 했다. 세상이 어수선해도 저만치에 찬란히 오고 있을 봄을 맞이하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스스로 맑아질 일이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