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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봄을 찾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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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봄을 찾아 나서다

백승훈 시인이미지 확대보기
백승훈 시인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도 지났건만 뺨을 스치는 바람은 여전히 차다. 해가 바뀌어도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 역병처럼 겨울 추위는 날이 갈수록 점점 기세를 높이는 것만 같다. 입춘이 지나면 까치들은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며 헌 둥지를 수리하느라 바쁘고 천변 오리들의 빨갛게 언 발은 점차 분홍빛을 띠기 시작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고 겨울빛에 잠겼던 천변을 따라 파릇한 새싹들이 돋아나는 봄을 그토록 기다려왔건만 어디에도 봄의 기미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시절이 어지럽긴 해도 봄이 올 것을 의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조금 더디게 올 뿐이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눈 속에 매화를 찾던 옛 선비처럼 문을 열고 직접 찾아 나서야 하는 계절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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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미를 찾아 중랑천으로 나가보았다.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은 쌀쌀하나 천변에 나가면 봄이 당도해 있을 것만 같아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응달진 곳엔 아직 얼음이 남아 있지만, 볕 바른 양지쪽으론 파란 물풀들도 이따금 눈에 띈다. 햇살이 일렁이는 물속에 시린 발을 담그고 먹이를 찾는 백로와 자맥질하는 물오리들의 모습도 평화롭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산책로엔 제법 많은 사람이 걷고 있다. 하나같이 마스크를 쓴 모습이 답답해 보이지만 왠지 저들도 나처럼 봄을 찾아 나선 것 같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고 천변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지난봄 천변 산책로를 따라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튤립 화단은 알뿌리를 보호하기 위한 거적으로 꽁꽁 덮여 있고 강가엔 머리 풀어 헤친 갈대들이 바람을 타고 있다.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간에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따금 햇살처럼 밝은 웃음이 터져 나온다. 호기심에 다가가 난간에 기대어 물속을 들여다보니 잉어 떼가 헤엄치고 있다. 팔뚝만 한 커다란 잉어들이 사람들이 던져주는 빵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물속을 유영하는 잉어들의 활기찬 모습에서 문득 봄이 느껴졌다. 잉어들이 파닥일 때마다 사람들의 마스크 쓴 입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도 봄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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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일심춘불견춘 (盡日尋春不見春)

망혜답편롱두운 (芒鞋踏遍壟頭雲)

귀래소념매화후 (歸來笑拈梅花嗅)

춘재지두이십분 (春在枝頭已十分)

종일토록 봄을 찾았으나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닳도록 구름 쌓인 곳까지 헤매었네

돌아오는 길에 웃고 있는 매화 향기 맡으니

봄은 가지 끝에 이미 한창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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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시는 남송의 유학자인 나대경(羅大經)이 지은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린 비구니의 오도송이다. 봄을 찾아 온종일 산속을 헤매다가 지쳐 집으로 돌아와 보니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봄이 집 안에 핀 매화 가지에 이미 한창이더란 내용이다.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봄은 온다. 그런데도 봄을 찾아 나서는 것은 마음 안에 봄빛을 들이고자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마른 풀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초록의 기운들,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겨울을 난 달맞이꽃이나 냉이 같은 로제트 식물들과 눈 속에서도 푸른 빛을 잃지 않았던 맥문동도 고요 속에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추위가 물러가고 봄비 한 번 스치고 나면 새싹들은 놀라운 기세로 들판 가득 번져갈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