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5일은 제77회 식목일이었다. 세계가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1조 그루의 나무 심기 운동에 돌입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2050년까지 30억 그루의 나무를 심어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해 탄소 중립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우리 인간은 단순히 숨 쉬는 것만으로도 1시간에 약 27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한 사람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약 20여 톤이 된다. 이 탄소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소나무 160그루가 필요하다고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큰소리치지만 우리는 나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탄소 중립 같은 거대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나무를 심는 일은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로마제국의 뛰어난 정치인이었던 키케로(BC106~BC43)는 "나무를 심어라. 다음 세대가 도움을 받을 것이다"라고 갈파했다. 나무를 심는 일은 적어도 20년~30년 후, 나아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다. 예전에는 아들이 태어나면 소나무를, 딸이 태어나면 시집갈 때 장롱을 마련해주려고 오동나무를 심었다. 어린 묘목을 심고 20, 30년이 지나면 푸르른 숲을 볼 수 있다. 나무를 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가치 있는 백년대계(百年大計)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중국의 소동파는 '밥상에 고기가 없을지언정(可使食無肉) 집에 대나무가 없을 수 있겠느냐(不可居無竹)'고 했다. 옛사람들은 집에 대나무를 심어 키우며 혹여나 정신이 저속해지는 것을 경계했다. 집에 고기가 없더라도 대나무가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할 만큼 나무는 그만큼 소중한 존재였다. 우리는 나무와 더불어 살아왔고 나무를 통해 철학과 인생, 자연을 배웠다. 나무는 어디에 뿌리를 내리던 평생 그 자리를 지키며 정중동(靜中動)의 미덕을 간직한다. 분주하면 보이지 않고 조용히 머물러야 자신을 볼 수 있는 법이다. 움직이지 않고 굳게 침묵하는 나무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어쩌면 나무가 한 번 뿌리 내리면 평생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이미 그 지혜를 깨달은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살구꽃 진 뒤 벚꽃이 피고, 백목련 떨어지니 자목련 피고… 피어나는 꽃들을 따라가기에도 숨이 가쁜 꽃 시절이다. 꽃빛에 이끌리고 꽃향기에 취해서 꽃나무 아래를 서성일 때마다 나는 고마운 생각이 들어 나무들을 한 번씩 안아보고 수피를 쓰다듬곤 한다. 나무들이 없었다면 이 봄날이 얼마나 황량하고 삭막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난 3월, 우리는 동해안의 산불로 막대한 숲을 잃어버렸다. 숲을 태우는 건 한순간이지만 그 숲을 되살리기까지는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숲이 필요하고 인간은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어느새 꽃이 진 나무에선 어느새 연둣빛 이파리들이 돋아나고 있다. 울울창창(鬱鬱蒼蒼). 나무들이 가득한 푸른 숲, 초록이 희망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