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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천마산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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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천마산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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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고 있다. 2년 넘게 우리의 일상을 옥죄던 코로나바이러스도 서서히 잦아드는 듯하다. 벚꽃잎 흩어지듯 코로나도 가뭇없이 사라져 봄의 정취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봄은 끊임없이 찾아 나서는 계절이다. 햇살이 화창한 봄날, 숲 친구들과 천마산으로 꽃 산행을 다녀왔다. 남양주에 있는 해발 812m의 천마산은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야생화의 성지이자 천상의 화원으로 소문난 꽃산이다. 천마산이란 이름은 태조 이성계가 이곳을 지나다가 '수장삼척가마천(手長三尺可摩天), 손이 석 자만 더 길면 가히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고 한데서 유래되었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이기도 한 천마산은 특히 봄이면 현호색과 노랑제비꽃, 금붓꽃, 노랑앉은부채. 얼레지 등 다양한 야생화가 곳곳에 피어나 꽃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느슨했던 신발 끈을 조이고 천천히 산을 오른다. 산 들머리에서 환한 꽃송이를 가득 달고 서 있는 벚나무의 환대를 받으며 산길로 들어서는데 연보라색 제비꽃이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다. 신기한 것은 처음 꽃 하나를 찾기는 어렵지만 일단 하나만 찾으면 마치 숨어 있던 꽃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듯 다투어 우리의 눈길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제비꽃을 보고 허리를 펴면 저만치에 생강나무꽃이 보이고, 생강나무에 다가서면 계곡 저편에 현호색이 눈길을 따라오는 식이다. 이토록 고운 꽃들을 못 보고 이 계절을 지나쳤으면 나의 봄도 쓸쓸했겠지만 꽃들은 또 얼마나 서운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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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슬픈 사실은 이 세상의 모든 식물의 꽃은 우리를 위해 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는 꽃에 대해 "가운데 자리에 한 여자(암술)가 드러누워 있고 둘레에 여러 남자(수술)가 둘러 있어 서로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꽃은 식물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생식기관이다. 암술과 수술을 감싸며 보호하는 꽃잎이 화려한 색으로 치장하는 것은 오직 꽃가루받이 성공을 위해 벌과 나비 같은 매개곤충을 유혹하기 위함일 뿐,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야생화를 찾는 사람이라면 자신 또한 자연의 일부이며 꽃의 입장에서는 불청객이자 무료관람객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름다운 꽃을 찾아 나서는 것은 삶에 지쳐 무뎌진 감각을 깨워 느슨해진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고픈 욕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술의 반대말은 추함이 아니라 무감각이라고 한다. 비록 우리를 위해 피어나는 꽃은 아닐지라도 꽃이 눈에 띄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홀린 듯 꽃 쪽으로 몸이 기울어진다. 숲 친구들과 꽃과 나무에 대해 공부하며 산을 오르다 보면 험하고 가파른 산길도 그리 힘들지 않다. 산의 중턱쯤에 올랐을 때 별들이 내려앉은 듯 등산로를 따라 피어 있던 노랑제비꽃 군락은 왜 이곳이 천상의 화원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지 단박에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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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표지석을 지나 하산하는 길은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바위 절벽에 함초롬히 피어 있는 처녀치마, 애기괭이눈을 좇다 보면 저만치에 흰 노루귀, 청노루귀가 빼꼼히 고개를 쳐들고 있다.

족두리풀과 계곡의 너덜경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미치광이풀도 종 모양의 가지색 꽃을 피워 달고 얼룩백이 얼레지도 지천으로 피어 있다. 그중에도 노랑앉은부채와 흰얼레지꽃을 불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꽃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산 아래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길을 내는 게 아니라 꽃이 길을 열어주는 것만 같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숲은 계절별로 온갖 야생화가 피어나 언제 가도 우리의 눈과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준다. 가는 봄이 아쉽다면 서둘러 꽃을 찾아 나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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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