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나 여전히 이러한 상황에 놓인 지인들이 많이 있다. 육아로 인해 사회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면 대부분이 여성들의 몫이며, 게다가 긴 육아휴직이 보장되고 돌봄 시스템을 갖춘 회사가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경력 단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초년생 때 만나 각자의 분야에서 빛나던 친구들의 대부분은 이제 사회에서 만날 수 없다. 실제로 여성정책연구원의 2016년 기업 직급별 여성비율 조사를 보면 사원직급 45%에서 시작해 과장까지 31.4%를 차지하다 차장부터 13.6%로 급감한다. 글로벌 조사도 국내보다 약간 높으나 다르지 않다. 2019년 맥킨지의 조사를 보면 신입직원 여성비중 48%에서 시작해 팀장급은 34%, 임원급은 26%로 비중이 낮아진다. 다른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이렇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좁혀진다.
남성보다 여성은 완벽함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휴랫팩커드의 사내보고서를 보면 '여성은 필요조건을 100% 충족해야 공개채용직에 지원하는 반면 남성은 필요조건의 60%를 충족한다고 생각하면 지원한다'고 한다. DDI의 연구에서도 많은 직장 여성들이 자신이 동료 남성보다 능력이 뒤진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여성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경향으로 인해 완벽주의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생각해보자. 이 완벽해야 한다는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외부의 목소리인지 내 마음속의 목소리인지.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이제는 이유조차 찾기 어려운 성별에 대한 혐오와 갈등, 정치권의 갈라치기 등. 하지만 이 시집의 제목처럼 우리가 공통언어를 찾아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성이 그들의 언어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 그래서 나아가 여성과 남성이 아닌 공통의 생각과 언어로 서로를 바라보는 세상을 만드는 힘을 키우는 것. 외부에서 온 말과 정의로 인해 스스로 완벽하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 내린 정의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그래서 세상이 말하는 완벽한 엄마나 완벽한 사회의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것 말이다. 이런 여성들이 사회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연대해서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연약함과 상처를 부인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길을 가는 수많은 여성들이 그의 자녀들과 후배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용기를 주는지 기억하면서 말이다.
김아름 플랜비디자인 책임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