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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오월의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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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오월의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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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오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 속에 떠 올리게 하십시오" -이해인 수녀의 <오월의 시> 일부 -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지며 윤기를 더해가는 오월의 숲은 싱그러움이 넘쳐난다. 하루가 다르게 활엽수의 이파리들이 잎 면적을 넓히며 숲의 빈틈을 메워 멀리서 보면 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초록 계열의 수채화 물감을 잔뜩 풀어놓은 듯 온통 초록 일색이다. 저마다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생기 넘치는 오월, 경기도 가평의 숲길을 걸었다. 초록으로 눈을 씻고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숲길 산책은 소확행이요, 작은 축복이다. 초봄의 싱그러운 연두를 지나 초록으로 짙어지는 숲은 어느새 생명력 넘치는 '깊고 그윽한 여름'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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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들머리에서 길 위에 내려앉아 물을 마시고 있는 한 무리의 나비 떼를 보았다. 호랑나비과에 속하는 산제비나비다. 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산제비나비는 일반 제비나비와는 달리 산속 깊은 곳이나 계곡 주변에 서식하며 봄과 가을에 2회에 걸쳐 나타난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언뜻언뜻 비치는 청색과 녹색의 매혹적인 무늬는 오묘하여 신비감을 자아낸다. 예전에는 '산신령나비'로 불렀을 만큼 오월의 깊은 숲에서나 만날 수 있는 신비로운 나비다. 그 외에도 얇고 투명한 날개옷을 입고 꽃 사이를 나는 모시나비도 보았다. 모시나비는 수컷이 짝짓기를 끝내면 암컷의 생식기에 자신의 분비물을 밀어 넣어 더 이상의 짝짓기를 할 수 없게 만든다고 한다. 일종의 정조대를 채우는 셈이다.

많은 나비를 볼 수 있는 오월의 숲은 아까시나무, 산사나무와 보리수, 때죽나무와 쪽동백, 야광나무와 고광나무 등 흰색 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소박한 흰 꽃들은 화려한 색을 지닌 꽃만큼 사람의 시선을 끌지는 못해도 곤충들에겐 최고의 밥상이 되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곡 어딘가에서 만났던 야광나무는 한동안 우리의 발길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 만큼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미풍에도 쉼 없이 흰 꽃잎을 허공에 마구 뿌려대던 그 황홀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새하얀 꽃이 밤에도 빛이 난다고 해서 야광나무란 이름을 얻은 야광나무는 잎가장자리가 들쭉날쭉한 아그배나무와 달리 밋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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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꽃(May flower)'이라는 영어 이름을 가진 산사나무도 5월의 상징처럼 활짝 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사춘'이라는 술로 유명하지만, 유럽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으로 봄의 여신에게 바쳤던 꽃이다. 인간에게는 아름다움과 약재로 사랑을 받는 꽃이지만 숲속 곤충들에게도 산사나무 잎과 꿀은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많은 종류의 곤충 애벌레가 산사나무 잎을 먹지만 검은끝짤름나방과 쌍점흰가지나방 애벌레는 오로지 산사나무 잎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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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걸으며 만났던 꽃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다 보면 꽃 한 송이에 하나의 세계가 들어 있다는 '일화일세계(一花一世界)'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서는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고 갈파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무심히 지나갔을 숲길이지만 그 숲에 사는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삶의 터전이요,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숲은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풍경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이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알아가는 일은 자연에 대한 단순한 지적 호기심만이 아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바탕을 닦는 일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숲에 들 때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의 오만을 버리고 자연의 일부가 되겠다는 작은 다짐이 필요한 이유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