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의 그늘에서 커온 기시다 총리가 아베가 사망했다고 당장 아베노믹스를 접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은다. 당분간은 아베노믹스의 기본 기조를 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집권 자민당 내 권력 구도의 변화에 따라 정책 방향이 바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 등 세계 각국이 고강도 통화긴축에 나서는 가운데 일본만 강력한 통화완화 정책을 고수하면서 극심한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부작용이 뚜렷해지고 있다. 엔화 약세로 수입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에너지의 약 90%를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으로서는 최근 원유·천연가스 가격 급등의 부담이 한층 가중되는 상황이다. 에너지 수입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진 반면 아베노믹스가 약속했던 엔저에 따른 수출 증가는 미미하다. 결국 최근에 끝난 2021회계연도(2021.4∼2022.3) 무역수지는 7년 만에 최대인 5조3천749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기시다 후미오 신임 일본 총리는 취임 직후 첫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해 “경제적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으면 소비와 수요가 살아나지 않고, 다음 성장도 바랄 수 없다”며 서민·중소기업의 소득 증대를 위한 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을 통해 함께 경제 성장의 ‘과실’을 나눠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9년 가까이 일본 경제를 이끌어온 양적 완화를 기반으로 한 ‘아베노믹스’에서 과감히 탈피해 기시다식 ‘소득 주도 성장’을 추진해 가겠다는 듯이다. 기시다 총리는 특히 △하청기업 등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성장의 과실을 제대로 분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고 △의료·개호(노인요양)·보육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올리며 △육아 가구에 주거비와 교육비를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대담한 양적 완화 △경기 부양을 위한 기동적인 재정정책 △투자 촉진을 위한 성장전략에 방점이 찍혀있는 아베노믹스와 결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기시다의 새로운 자본주의란 한마디로 분배 없이 다음 성장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차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뤄 국민이 잘살 수 있는 경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기시다 총리는 국채 발행과 ‘금융소득’에 대한 세율 인상 등을 통해 분배의 재원을 마련해간다는 구상을 밝혀왔다. 주식 매각 이익이나 배당에 매기는 일본의 금융소득세는 일률로 20%다. 금융소득은 부유층에 몰려 있는 만큼 이를 올려 세수 확보와 격차 해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요즘도 “‘1억엔의 벽’을 허물기 위해 금융소득과세를 개편하겠다고 밝히고 잇다. 1억엔의 벽이란 세금 부담이 소득 1억엔 까지는 점점 커지다가 1억엔을 넘으면 되레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부유층일수록 누진세가 적용되는 급여 소득보다 세율이 일률적으로 20%인 금융소득 비중이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시다 총리는 금융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인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으면 중산층 지원을 늘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베 신조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내각은 주식시장에 충격을 준다는 이유로 추진하지 않았던 정책이다.
기시다는 중산층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유도함으로서 일본의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기업들이 임금을 올리면 정부가 매칭펀드형식으로 보조금을 주겠다는 계획도 발표한 상태이다 아베의 아베노믹스가 마이너스 금리로 기업에 혜택을 몰아준다음 낙수 효과로 경기진작을 노린 것과 대조적으로 기사다의 새로운 자본주의는 중산층의 소득을 집중적으로 늘려 경기회복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기사다 총리는 1957년 7월 29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한후 은행에서 잠시 근무하다 1993년 부친의 지역구인 히로시마(廣島)시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그의 집안은 3대에 걸쳐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 가문 출신이다. 조부는 기시다 마사키 전 중의원이다. 부친은 중소기업청 장관을 지낸 기시다 후미타케(岸田文武) 전 중의원이다. 1993년 정계 입문 이후 내리 9선 의원이 됐다. 그동안 외상·자민당 정무조사회장·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 등을 지냈다. 총리 4명을 배출한 명문 파벌 '고치카이(宏池會)’을 이끌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때 외상으로 임명됐다. 2015년 12월 28일 당시 한국의 윤병세 외교장관과 함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발표한 바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