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미국 경제학은 케인지안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케인지안이란 케인즈 경제학을 추종하는 경제학의 학파를 일컫는다. 케인즈 경제학은 한 마디로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있다. 경제를 시장 자율에만 맡기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시장의 모순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1920년대와 1930년 대공황이 시장에만 맡긴 결과 유효수효가 부족해 생겨난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경제학이다. 케인지안들이 득세하던 시절 미국 연준은 걸핏하면 금리를 조정했다. 뉴욕증시가 조금이라도 이상조짐이 발견되면 기준금리를 대폭 올리거나 반대로 대폭 내리는 급격한 통화정책을 남발했다.
연준이 시장 개입을 할 때 시장 상황에 따라 완곡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섣부르게 대응하여 발생하는 부작용을 샤워실의 바보에 비유한 것이다. 프리더먼의 지적 이후 샤워실의 바보는 중앙은행이 섣부르게 시장에 개입하여 물가 불안과 경기 침체를 더 키우는 현상을 지적하는 경제학의 교훈으로 자리 잡았다. 중앙은행이 경제의 단면만을 보고 섣부르게 시장에 개입할 경우 오히려 물가 불안 또는 경기침체를 초래하거나, 더 심화시키는 상황을 빗댄 표현, 혹은 이를 경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때로는 경제 전반에서 어떤 정책을 시행한 후 그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또 다른 정책을 시행하여 역효과가 생기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튼 프리드먼(1912-2006)은 정부의 섣부른 경제정책이 경기 변동의 폭을 오히려 크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경기의 고점과 저점을 판단하는 게 쉽지 않고, 설령 경기판단이 정확해도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은 오랜 시일이 필요해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면서 섣부런 개입의 부작용을 갈파했던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7월 통화정책회의 즉 FOMC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 경우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이 우려된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CME) 그룹이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FFR) 선물의 가격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준의 통화정책 변경 확률을 추산하는 페드워치에 따르면 0.75%포인트 인상 확률이 압도적이다. 그 다음은 1%를 올리자는 울트라 스텝이다. 0.5%포인트 인상 즉 빅스텝은 뉴욕증시의 안중엔 없었다.
이 예상대로 연준이 움직이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27일에 1.5∼1.75%에서 2.25∼2.5%로 오르게 된다. 이는 한국의 기준금리(2.25%)보다 0∼0.25%포인트 높아지는 것이다. 한미 기준금리가 역전되는 셈이다. 한국은행이 8월 25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추가로 0.25%포인트 올리면 한미 기준금리가 같게 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즉 금통위 정례회의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흐름이 전망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금리를 당분간 0.25%포인트 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은행의 이러한 인상에도 금리 역전 추세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준이 오는 9월 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또 0.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럴 경우 한미 기준금리가 동률이 된 지 한 달도 채 안 돼 다시 역전된다. 그 최소 연말까지 역전 상태가 유지된다. 이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폭에 대한 시장의 예상인 7월 0.75%포인트, 9월 0.5%포인트, 11월 0.25%포인트, 12월 0.25%포인트를 적용한 결과이다. 한국은행 금통위 역사상 첫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에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으로 이달 중 한미 금리 역전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금리 역전이 일어나면 우리나라에 와있던 외국인 자금이 한꺼번에 미국으로 빠져 나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외국인 자본의 대량 유출은 우리나라의 국가부도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도 있다.
과연 그럴까. 금리가 돈의 값인 만큼 돈 가치를 더 많이 쳐주는 쪽으로 돈이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돈 이라는 것이 금리 하나만 보고 움직이지는 않는다. 금리만 볼 경우에도 지금의 금리보다는 미래의 예상 금리가 더 중요하다. 이미 금리를 많이 올린 나라는 추가 인상 가능성이 덜 할 수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한미 금리가 역전되더라도 자금유출 영향이 제한적인 만큼 과도한 우려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금융센터는 ‘한미 정책금리 역전 가능성 및 자금유출 영향’ 보고서를 통해 “외국인들의 원화 채권 투자 패턴, 과거 정책금리 역전 사례 등을 감안할 때 실제 한미 정책금리가 역전 되더라도 큰 폭의 자금유출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이 보고서는 특히 원화 채권에 투자하는 외국인 특징을 주목하고 있다. 해외 중앙은행이나 연기금 등 공공부문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 투자 등 달러화 자산 투자 이외 운영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우량한 신용등급의 원화 채권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미 금리역전으로 포트폴리오 전환 가능성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또 민간부문 투자일 경우에도 오랜 기간 재정거래 목적의 원화 채권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잇다. 스왑 거래를 활용하면 낮은 신용위험으로 미국 국채투자보다 더 높은 투자수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 수익률 측면에서도 양호한 투자처를 외면할 가능성이 아주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양국 간 정책금리 역전 상황에서도 채권투자와 원·달러 통화스와프를 활용한다면 초과 수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왑을 하지 않고 환 위험을 감수하는 원화 채권 투자자도 최근 원화가 과도한 약세인 만큼 향후 원화가 강세 전환할 경우 추가적인 환 차익도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과거의 사례를 봤을 때도 대규모 자금 유출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8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미국 정책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보다 높았다. 그때에도 외국인들은 원화 채권을 회수하기보다 오히려 25조 1000억 원이 넘게 투자했다. 역전 폭이 75bp로 가장 컸던 2018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 12조 원을 순투자하는 등 원화채권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한국은행도 과거 우리나라의 대규모 자본유출 사례와 현재 대내외 금융·경제상황에 비춰 볼 때 대규모 자본유출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한은은 최근 '미국 연준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한은은 이 보고서에서 2008~2009년, 2015~2016년을 각각 1차, 2차, 3차 자본유출기로 구분하고 그 특징을 살펴보면 대규모 자본 유출에는 내외금리차 보다는 국제금융시장 불안의 전이, 국내경제의 취약요인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자본이 유출된 사례는 3차 자본유출기가 유일하다"면서 "그 자본유출은 모두 신흥시장국 또는 선진국에서 비롯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국내로 전이되면서 촉발됐다"고 설명했다. 1차 유출기에는 아시아 외환위기, 2차 유출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3차 유출기에는 중국과 자원수출국의 경제불안이 각각 국제금융시장의 리스크 민감도를 높이면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금리 역전과 자본유출은 그 자체만으로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한은은 이같은 분석 결과와 현재 금융·경제상황에 비춰 보면 향후 미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 기조 하에서 우리나라에 대규모 자본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물론 대외 취약성이 높은 일부 신흥시장국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그 전이 효과로 우리나라에서도 자본유출 압력이 커질 가능성은 있다. 이는 한미 금리역전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