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나팔꽃을 보았다. 수령이 수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둥치를 휘감아 오르며 넝쿨 사이사이로 피어난 나팔꽃을 보는 순간, 내 안에 꽃등을 켠 것처럼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여름이 다 가도록 눈길이 가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 저렇게 환한 꽃을 피워 달다니!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벚꽃이 피어야 그제야 우리는 주변에 벚나무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꽃이 피기 전에도, 꽃이 진 뒤에도 벚나무는 그렇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한창 들꽃에 매료되어 온통 꽃 생각으로 가득했던 시절, 그 환하고 눈부시기만 한 나팔꽃이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꽃 속의 꿀을 훔쳐 가는 것이 미워서 개미들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이슬이 마를 즈음이면 꽃잎을 닫아버린다는 나팔꽃의 새로운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새삼 허술하기 그지없는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남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무조건 베풀지는 않는다는 것,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 그게 곧 삶의 법칙이란 것을 깨달았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요즘, 천변을 따라 나팔꽃이 한창이다. 나팔꽃은 왼쪽으로 감으며 뻗어 올라가는 덩굴식물이다. 새벽 서너 시에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해 아침에 활짝 핀다.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로 불리는 이유다. 오후가 되면 꽃잎을 닫는다. 꽃봉오리가 한 번 열리면 질 때까지 내내 피어 있는 게 아니라, 날마다 오전에 꽃을 열고 오후에 꽃을 닫고 다음 날 다시 여닫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팔꽃을 관찰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게으른 사람에겐 자신의 아름다움을 관찰할 기회도 주지 않는 단호한 꽃이다.
비록 꽃의 수명은 짧은 편이지만, 그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씨를 맺는 능력은 놀랍기만 하다. 그런가 하면 나팔꽃은 대기오염 물질인 오존이나 이산화황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들깨, 샐비어와 함께 대기오염의 정도를 알아보는 지표식물로 쓰인다. 새까맣게 광택이 나는 나팔꽃의 씨를 '견우자(牽牛子)'라고 하며 약재로 쓰는데,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옛날에 소가 끄는 수레에 나팔꽃 씨를 싣고 다니며 팔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란 동요를 흥얼거리게 하는 나팔꽃은 인도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지만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꽃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고향 집 울타리를 타고 오르던 나팔꽃의 환한 기억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아침마다 희망의 나팔을 불어대는 나팔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허공을 향해 멈출 줄 모르고 덩굴손을 뻗어가는 모습은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는 것만 같다. 어느덧 천변엔 나팔꽃 외에도 벌개미취, 금마타리, 부용화도 피고 있다. 삶이 지루하게 느껴지면 천변에 나가 꽃을 볼 일이다. 굳이 말 걸지 않아도 꽃이 향기로 말을 걸어올 게 분명하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