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 폭락은 영국의 감세정책으로 부터 시작됐다. 신임 트러스 정부가 대규모 부자감세를 발표하면서 파운드화가 사상최저로 추락했다. 그로 인해 금융 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영국 중앙은행 BOE 가 "필요한 만큼 주저 없이 금리 조정"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근급 금리인상 없자 실망감 국채 금리 2거래일 만에 1%포인트이상 올랐다.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판매 일시 중단에 들어갔다. 영국 정부가 지난주 감세 정책을 내놓은 여파로 파운드화 가치가 한때 사상 최저로 떨어지고 또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그야말로 대혼란이다.
파운드화는 지난주 금요일인 23일 영국 정부가 50년 만에 최대 폭 감세 정책을 발표한 후 투매에 빠졌다. 정부는 감세를 통해 경제 성장을 유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금융시장에선 국가 부채가 급증하고 물가 상승세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소득세율 인하로 감세 혜택이 고소득자에게 집중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여기에 콰텡 재무부 장관이 추가 감세 입장을 밝히자 이날 파운드화 가치는 더 떨어졌다. 감세 정책은 트러스 영국 총리가 보수당 표심을 잡은 주요 비결이다. 그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영국은 1816년 금본위 제도를 채택했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척으로 영국 경제가 폭발하면서 파운드는 중심통화가 됐다. 영국 런던은 국제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영국 파운드는 오랫동안 유일한 국제통화로서 국제무역의 결제수단으로 사용되어왔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 경제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옮겨짐에 따라 파운드는 달러에 밀려 제2의 국제통화로 위상이 추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대외준비통화로서의 파운드화의 지위가 스털링 사용지역으로 제한되었다. 이후 국제수지의 만성적 불안으로 파운드화의 위세는 더 위축됐다. 영국은 1973년 1월 1일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하였으나 국내 경제사정 등의 이유로 EC의 환율 공동정책에 대하여는 동의하지 않았다. 유로존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파운드화는 미국 달러화보다는 교환 비율이 높았다.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영향력은 달러에 이어 2위였다.
그러던 파운드 스털링(Pound sterling)이 최근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영국 정부의 대규모 감세정책 발표에 이어 추가 감세까지 예고되면서 파운드화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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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