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뉴욕증시에 따르면 파생상품인 LDI에 물린 英·美 연기금의 '디폴트 공포'가 뉴욕증시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영국과 미국 연기금이 주요 전략으로 활용해온 ‘부채연계투자(LDI·liability driven investment)’가 뉴욕증시와 비트코인을 흔드는 금융 불안의 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LDI란 부채에 레버리지 투자를 할 수 있는 파생상품의 일종이다. LDI채권 금리가 급등하면 손실이 커진다. 뉴욕증시에서는 LDI 투자 비중이 큰 영국과 미국의 연기금 중 일부가 마진콜, 즉 추가 증거금 요구 여파로 채무불이행(디폴트)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파생상품 LDI에 물린 英·美 연기금 '디폴트 공포'가 뉴욕증시의 뇌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10여 년 동안 영·미 연기금 사이에서 투자전략으로 각광받아온 LDI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라고 특집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LDI발 공포는 비단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WSJ는 미국 기업연금 중 일부가 LDI 투자에 따른 마진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전했다. 미국 기업연금 등의 LDI 노출액은 아직 공식 집계되지 않았다. 최근 국채 금리가 급등하기 전만 해도 LDI 수익률은 양호한 편이었다. 트러스 영국 총리가 지난 9월23일 대규모 감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영국 국채 가격이 급락하면서 영국 연기금들은 10억 파운드(약 1조5000억원) 규모의 마진콜을 요구받았다. 증거금 역할을 한 영국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서 추가 증거금이 필요해진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기조로 국채 금리가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미국 기업연금들은 올 들어서만 추가 증거금으로 이미 수천만 달러를 납입했다.
연금펀드가 지금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지급해야 할 연금부채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레버리지도 광범위하게 이용한다. LDI 레버리지는 연금펀드의 부족분을 당장 메우지 않아도 문제가 없도록 해주지만, 채권 시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국채금리가 치솟으면 큰 부메랑이 된다. 레버리지 거래에는 국채수익률 변화를 헤지하기 위한 증거금이 필요하다. 국채 가격이 급변동하면 헤지 비용이 늘어나 마진콜을 요구받게된다.
영국 정부가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하자 국채 발행을 늘려야 할 것이라는 관측에 국채 가격이 급락했고, 그러자 연금펀드의 LDI 레버리지 거래에서 증거금을 늘려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 결과 영국의 연금펀드들이 현금을 마련하려고 보유하고 있던 국채를 팔면서 패닉성 매도가 발생했다. 이 매도로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또다시 증거금 증액 요구를 받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영국 국채 금리가 폭등하는 것은 물론 연금펀드 파산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영란은행은 채권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 국채시장의 패닉을 불러일으킨 방아쇠는 정부의 감세안이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LDI 전략이다.
영국 연기금의 LDI는 현금 및 국채 등 안전자산 투자에 주식 등 수익추구형 포트폴리오(RSP)를 결합한 자산배분 전략이다. 기업의 퇴직금 충당부채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점으로 적극 활용했다. 금리가 급등하고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 LDI 전략을 채택한 퇴직연금은 채권을 팔아치우게 돼 채권가격 추가 하락을 촉발한다. "악순환이 시작되고 퇴직연금은 채권을 계속 팔아치우게 된다"며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한 전문가는 말했다.
미국 뉴욕증시는 LDI 쇼크로 하락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93.91포인트(0.32%) 하락한 29,202.88로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보다 27.27포인트(0.75%) 밀린 3,612.39로, 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110.30포인트(1.04%) 떨어진 10,542.10으로 장을 마감했다. 나스닥지수는 2020년 7월 이후 최저치로 마감했고, S&P500지수는 지난 9월 말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LDI 폭탄이 다가오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