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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사과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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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사과의 품격

전지현 유통경제 부장.이미지 확대보기
전지현 유통경제 부장.
최근 유통업계가 흉흉하다. SPC와 푸르밀을 둘러싼 사건들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두 기업의 이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관련 뉴스를 쏟아내면서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두 기업이 소비자 접점에 있었던 만큼이나 충격은 크다.

얼핏 보면 두 기업은 각각 다른 사건에 휘말렸다. 그러나 리더의 책임감 부재란 공통점이 있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지 6일, 윤석열 대통령이 질타한지 하루 만에 국민 앞에 나타나 고개를 숙였고, 신동환 푸르밀 대표는 가족과도 같았던 임직원 생계가 달린 문제를 두고 일방적 통보를 했다.
한 달여 앞선 지난달 26일 오후 4시경에도 비슷한 풍경은 있었다. 다른 점은 리더의 자세였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사건 당일 현장을 찾아 유족에게 사과부터 했다. 사건 발생 8시간만의 일이었다. 정 회장은 사고 즉시 대응팀을 꾸려 현장으로 보냈고 본인도 현장으로 갔다. 이후에도 구조 및 수습 상황을 챙겼으며 이튿날에는 분양소를 찾아 또 허리 숙였다.

앞선 두 기업과 현대백화점그룹에 대한 상반된 결과는 의사결정에 있어 내부 전문 경영진들을 거수기 역할로만 전락시켰는가의 유무란 게 유통업계 중론이다. 보수적 오너십 때문이란 것이다. 평소의 내부 분위기가 위기 상황이 닥치니 극명하게 다른 결과를 불러왔다는 이야기다. '사과'가 넘쳐나는 세상 속 '사과'조차 없거나 기시감이 느껴지는 '사과'를 접해야 했던 점을 놓고보면 이 같은 시선에 무게가 실린다.
국내 내로라하는 유통기업들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뿌리내렸고 자연스레 '한국식 오너경영'이 자리 잡았다. 덕분에 한국경제는 압축성장을 했지만 커진 몸집과 달리 '오너십'은 아이 수준에 머무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물론 오너경영은 강력한 리더십을 통한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가 최대 장점이다. 따라서 경영과 소유 분리 모델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식 오너경영'과 '대물림 경영'에 냉소적 시선이 넘쳐나는 것은 몸집만 커진 기업들이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때 대표나 회장이 성과급을 왜 더 가져가냐는 MZ의 불만에 기성세대가 고개를 갸웃한 것 역시 리더로써 느낄 책임감의 무게가 배제됐다는 이유에서였다.

사회적 책임을 중심에 둔 ESG 경영이 확대되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기업의 안전조치가 강화되면서 기업이 일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 특히 최근 '돈맥경화'가 일고 있는 경색된 시장상황 속 기업들은 더 활발히 일할 수 없는 환경에 처했다.

한국경제는 어떤가. 과거의 IMF 상황이나 금융위기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만큼 위기 경보가 울리고 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어렵다고들 난리다. 한국경제 한파,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인 유통업계가 느낄 체감은 더 빠를 수밖에 없다. 제2의 푸르밀이 언제든 나올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한 배경이다.

하지만 기업의 위기는 항상 있어왔고 반복됐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기업 안팎으로 위기가 덮치는 이때, 열린 자세로 무한 책임을 보이는 오너십의 발휘된다면 '한국식 오너경영'은 신화로 의미가 부여되던 '창업가 정신'으로 재평가될 것이다.


전지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ee7871@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