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유통기업의 한 임원은 2023년도 사업전략을 짜는 내부 분위기를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연말마다 듣는 말이었지만, 올해는 유독 '그저 해왔던 푸념'을 넘어 업계 위기감이 탄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학자, 기업 할 것 없이 곳곳에서 내놓는 2023년 우리 경제 전망은 잿빛이다.
그러나 러-우크라 전쟁에 따른 글로벌 경제 위기는 국제사회에 큰 리스크를 던졌고 과거의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란 희망을 꺾었으며 한국 경제 주체인 기업들을 궁핍한 상황으로 내몰고 말았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에도 '신사업 발굴'과 '경쟁력 확보' 등 도전을 외쳤던 수장들의 신년사와 대비될 만큼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대한 역대급 위기 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 때문인지 2023년 시작과 동시에 유통시장 전체적으로 끝 모를 최악의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다행인 것은 위기 속에서도 기업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위기를 기회로'란 주문을 외고 있다. 올해 유통 수장들은 모두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자고 힘줘 말했다.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와중에 위기 속에서도 위기 탈출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짜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의 파고를 기업의 힘으로만 넘기엔 역부족하다. 정부와 정치권이 올해만큼은 경제 주체인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활동하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위기 극복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위기 극복도 힘겨운 우리 유통기업들이 여전히 강력한 규제에 가로막혀 있어서다.
대형마트의 족쇄법은 완화됐지만 의무휴업 규제가 남아있고 법인세는 '부자 감세' 프레임에 갇혀 1%p 인하에 그쳤다. 노동 환경은 어떤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계기로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신년 메시지에 담은 말처럼, 우리 기업들은 경쟁국보다 강력한 규제와 경직적 노동 환경 속에서 경쟁해야 하면서 새로운 사업에 마음껏 진출하고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경영 환경이 전혀 아니다.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 소매시장 성장은 전년 대비 1.8%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코로나19 이전보다 성장세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통기업들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경쟁은 심화될 것이란 게 업계 분석이다. 이 추세대로라면 유통기업들은 경기 침체에 대비한 선제적 긴축 경영에 나서면서 투자를 줄이고 인력을 감축할 수밖에 없다.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 토끼는 온화한 성품을 가졌지만 재빠른 움직임에서 영특한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또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긴 토끼는 내리막에서는 젬병이지만 오르막에선 날쌔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 진가를 보이는 토끼처럼 우리 기업들은 특유의 기지로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도 이겨낸 경험과 저력이 있지 않은가.
단, 힘을 합쳐야 한다. 기업이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강력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주고 기업의 경영 활동 자유도 보장해야 한다. 기업이 지혜를 짜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일자리도 늘고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유연하지 못한 노동시장 환경과 글로벌 경쟁력을 해치는 각종 규제를 개혁함으로써 우리 경제 주체인 기업들이 위기 극복과 위기 후 재도약에 나서도록 만들어야 할 2023년이다.
전지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ee7871@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