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고 다른 고객사도 확보해 두세요."
삼성전자 담당자가 A 협력사에 개인적으로 몇 년간 건넸던 조언이다. 협력사의 좋은 기술력을 다른 기업에도 납품하면서 경영 리스크를 줄이고 독립성을 강화하라는 취지에서다.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은 삼성전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거의 100%에 육박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이러한 중소기업 협력사들은 삼성전자의 한숨에도 태풍을 맞을 수 있는 신세다. 철저한 갑을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에서 어닝쇼크(실적 충격)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일 2022년 4분기 연결기준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4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58%, 69% 감소했다고 밝혔다. 연간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대폭 감소했다.
이미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高)'에 고통을 받는 중소 협력사들은 삼성전자가 긴축 경영에 돌입하면서 협력사 주문도 줄이게 된다면 어떤 곳은 존폐의 갈림길에 설 수 있다.
A 협력사도 2~3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가 매출의 90~10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상황 그대로였다면 이번 삼성전자 어닝쇼크에 적자 전망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A 협력사는 몇 년간 다른 고객사를 적극 유치하는 노력 덕분에 이번 삼성전자의 어닝쇼크 여파에서 한숨 돌리게 됐다. 오히려 신규 고객사 확보로 전년도보다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고객사가 협력사에 신규 고객사를 찾으라고 조언하는 상황은 사실 자연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과거에는 고객사들이 일반적으로 다른 경쟁사에 납품하는 것을 막거나 협력사 쪽에서 눈치 보였던 관행이 있었지만 분위기가 변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 비중이 한 고객사로 편중되는 것은 수주산업 특성상 위험성을 늘 내포하고 있다"며 "내부 경쟁력을 통해 사업을 다변화하고, 다양한 성장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늘려가는 것이 지속 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발판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경쟁력을 확보해 가는 것은 기존 주요 고객사들 입장에서도 든든한 협력사를 확보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회장 취임 후 협력사를 둘러보는 파격적인 첫 행보를 보였다. "협력사가 잘 돼야 우리 회사도 잘 된다"는 그의 말처럼 오늘날 어려운 시국에서 상생 철학이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정진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earl9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