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보다 모든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새해가 밝았다. 이에 부응이나 하듯 국내 36개 공기업 수장들은 새해 첫날부터 해당 업체 최일선 현장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거나 시무식에서 올해의 목표 달성과 개혁을 외치며 새해 결의를 다졌다.
혹한의 꼭두새벽, 한 CEO는 바람이 매서운 드넓은 활주로를 찾아 새해 첫 시설 안전점검에 나서고, 또 한 CEO는 취임 후 첫 주말을 전국의 LNG 생산기지를 일일이 방문해 상황을 점검하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이는 가뭄이 심각한 현장을 직접 찾아 용수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이렇듯 수십여 명의 수장들은 각양각색의 새해 첫날을 보냈다.
새해 들어 이들이 연일 외치는 수많은 ‘구호’는 공기업의 특성과 형태에 따라 조금씩 다를 뿐 의미는 거의 비슷하다. ‘쇄신과 혁신’을 외치고 ‘경쟁력 강화와 신경영’을 선포했다. ‘공정거래와 동반성장’을 다짐하고, ‘미래가치와 지속적인 신성장동력 창출’을 결의했다. ‘청렴과 반부패’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새해 화두다. 여기에 ‘상호 소통과 공감’까지 더하면 굵직한 신년 구호의 틀은 대충 완성된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여기에 ‘안전과 국민의 신뢰’가 더해져야 올해 모든 화두의 정점을 찍는다. 특히 중대재해법 도입으로 ‘안전’은 거의 모든 기업에서 최고의 가치이자 실천 과제가 됐다. 과연 이 많은 새해 결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는 있을까?
연초부터 쏟아진 거창하고, 원대한 공기업의 각종 구호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그리 썩 곱지 않다. 오히려 냉소적이고 싸늘하다. 오랫동안 누적된 공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계속된 반복으로 인한 체념 때문인지 모른다. 방만 경영으로 인한 비효율성과 관리 중심의 상위 조직 비대화, 관료화와 경직성에 이르기까지 근원적이고 내재적인 공기업의 속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뿌리 깊다.
고질적인 임원 억대 연봉과 성과급 잔치, 끊이지 않는 ‘낙하산 인사’, 매년 쌓여만 가는 수백조원대 적자에도 인내하던 국민의 감정은 내부 정보를 이용, 신도시 예정지에 벌인 집단 투기극에 이르러선 마침내 폭발했다. 조직 해체까지 거론됐던 사태는 공기업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마침내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며 개혁의 칼을 높이 쳐든 정부. 3년간 1만 명이 넘는 인원을 감축하는 인적 쇄신을 예고했다. 스스로의 개혁과 쇄신으로 신뢰받는 공기업으로 거듭날 것인가 아니면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인가? 연초에 수없이 외친 구호가 허울뿐인 메아리가 아니길 기대한다.
남상인 글로벌이코노믹 선임기자 baunamu@g-enews.com